한국에도 코코 샤넬이 있었다, 그 이름 노라 노[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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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딱 한 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드리고 싶은 말씀도 이것 하나입니다. 감사합니다.”

3월 20일 서울 강남구 경운박물관에서 한국의 1세대 패션디자이너 노라 노(노명자) 선생의 전시 ‘노라 노: First & Forever’ 오픈식이 있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한 이들과 그녀의 인생에 친구가 돼 준 많은 분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죠. 연단 뒤쪽으로 의자도 마련됐는데, 80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곱게 단장한 어른들이 북적대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사회자의 안내로 연단에 오른 노 선생은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나이로 올해 99세. 저 정도 나이가 되면 세상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감사합니다”일까 궁금했습니다. 오픈식에는 그녀의 백수(白壽) 생일을 축하하는 순서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계단을 오른 노 선생은 생일 축하 노래가 잦아들 무렵 입으로 바람을 불어 촛불을 껐는데, 그중 한 개가 꺼지지 않아 함께 있던 사람들이 ‘후∼’ 하고 힘을 보탰지요. 이렇게 치르는 99세 생일 파티라니, 복이 많은 인생이라 느꼈습니다.

1928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그녀의 인생은 남다른 서사로 가득합니다. 17세에 결혼했지만 19세에 이혼을 하고, 자립을 위해 영어와 타이핑 공부를 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0달러 수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나라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인생을 찾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입니다. 당시 이혼은 주홍글씨를 새길 만큼 ‘비정상적’인 일이었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승낙과 함께 미련 없이 그 길을 택했습니다.

미국 프랭크 위긴스 트레이드 스쿨에서 5년간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귀국한 그녀는 서울 중구 명동에 양장점 ‘노라 노의 집’을 내며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1956년에는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고, 1979년에는 미 뉴욕에 진출합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노라 노의 로고가 빼곡했는데, ‘노라 노’라는 글자 밑에 ‘SEOUL, KOREA’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태극기가 들어간 로고도 보였지요. 로고가 발산하는 것은 노 선생의 당당함이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나는 한국을 위해 더 큰 일을 하고 싶다….’ 놀라운 도전과 성취의 바탕에는 개안과도 같은 그녀의 선진의식이 있었습니다. “옷은 예술이 아니라 산업이며 생활”이라고 생각해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기성복을 공격적으로 선보이고, 더 빠르고 정확한 옷을 만들기 위해 옷감 도안 작업에도 몰두합니다.

그렇게 만든 옷이 지향하는 방향은 여성들의 멋과 자유였습니다. 그녀가 만든 옷을 입고 여성들은 멋있게 일하고 멋있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 패션 브랜드 샤넬의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애칭 코코 샤넬)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도 샤넬이 있었고, 그 이름은 노라 노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처럼 보여도 내 노력을 지켜보는 사람이 반드시 한 명은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에 길을 내주면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는 거예요.” 전시는 7월 16일까지 이어집니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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