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인 종로선 열차가 처음 달리던 날 사람들은 작은 종이 한 장에 설렘을 담아 들고 있었다. ‘에드먼슨식 승차권’으로 불린 이 종이는 영국 어느 지방 역장 이름에서 시작돼 먼 이국땅 서울까지 닿았다. 도착역과 요금이 인쇄된 승차권을 직원이 개표 가위로 펀치 하면 지하철 여행이 시작됐다. 그 시절 버스를 탈 때도 여정의 증표가 된 건 한 장의 종이였다. 열 장짜리 회수권에서 한 장을 떼어 안내양에게 내밀던 풍경은 이제 아득하기만 하다.
에드먼슨식 승차권의 바통은 마그네틱 승차권이 이어받았다. 종이 승차권 뒷면 자기띠에 저장된 정보가 개집표기에서 자동으로 읽히는 편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자기띠는 자석이나 땀에 취약해 인식 오류가 자주 발생했다. 훼손된 승차권을 마그네틱 뷰어로 판독해 잔액을 환불해 주는 일은 직원들의 일상 업무 중 하나였다.
기술과 생활이 빠르게 맞물리던 1990년대 중반에 이르자 신기술이 등장했다. 무선주파를 활용한 비접촉식 RF 교통카드 시스템은 이동 속도와 편의성을 눈에 띄게 높였다. 종이 승차권의 자리를 조금씩 대체하던 교통카드는 환승 할인제가 처음 시행된 2001년을 기점으로 ‘태그의 시대’를 연다. 2000년 29.3%에 불과하던 교통카드 이용률은 이듬해 45.2%로 크게 상승했고 대중교통 간 통합요금제가 본격 시행된 2004년에는 74.4%까지 뛰어올랐다.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니던 사람들이 교통카드를 꺼내 들면서 노란색 마그네틱 승차권은 조용히 잊혔다.
2009년 1회용 교통카드 전면 도입은 종이 승차권에 마침표를 찍었다. 종로선 개통 후 35년 만이었다. 자동발매기가 매표소를 대신하면서 기기 사용이 익숙지 않은 일부 시민은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변화는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어 뿌리를 내렸다.
이제 우리는 태그 한 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를 뒤로 하고 손길조차 필요 없는 ‘비접촉 결제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출퇴근 시간 개집표기 앞에 길게 늘어선 줄도, 가방에서 교통카드를 찾느라 분주한 모습도 희미해져 갈 것이다. 대신 우리는 자신만의 속도로 공간을 넘나들며 새로운 차원의 자유와 편리함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손에 쥔 종이 승차권의 감촉은 오래전 손끝을 떠났지만 그 조그마한 종이 한 장이 이어주던 세계는 여전하다. 지금도 우리는 무언가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시간의 끝에 또 어떤 승차권이 우리를 기다릴지 모르겠다. 형태가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동의 본질일 것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그 길에서 만나는 기대와 설렘. 이동은 어쩌면 우리 삶을 이어주는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연결고리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