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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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존재의 이유

우리가 돈을 빌리고, 갚고, 굴리는 일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고대 수메르에서는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고, 중세의 베네치아에서는 유대 상인들이 거리의 탁자 하나를 앞에 두고 대출을 해줬다. 그 탁자를 뜻하는 ‘방코(banco)’는 훗날 우리가 흔히 쓰는 ‘뱅크(bank)’라는 단어의 어원이 됐다.

금융은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 왔지만, 한 가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돈이 꼭 필요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들 모두가 적절한 금융 서비스를 받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이다. 2014년, 우리가 처음 이 시장에 들어섰을 때도 그랬다. 당시 은행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었고, 다른 금융회사의 금리는 지나치게 높았다. 5%도 안 되는 이자율과 20%를 넘는 대출 사이엔 마치 커다란 절벽이 하나 놓여 있는 듯했다. 그 사이를 메우고자 ‘중금리대출’ 시장을 열어 P2P 금융업이 시작됐다.

기술로 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기존 시스템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찾아내고 싶었다. 신용등급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던 사람들에게도 신뢰할 수 있는 금융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렇게 에잇퍼센트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쉽지 않았다. 초기 몇 년간 제도는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고, 투자자들은 조심스러웠다. P2P 금융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던 시기였다. 하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우리가 걷는 길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은 점차 달라졌다. 2020년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이 도입되고 이제는 하나의 금융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핀테크와 전통 금융이 협력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저축은행의 온투업 상품 투자가 이달 시작된다. 해외 P2P 금융산업의 주요 성장 요인이던 금융회사의 시장 참여가 한국에서도 본격화된다는 의미다.

산업이 탄생한 지 10년이 된 지금, 우리는 자문한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금융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다. ‘돈이 없으면 기회도 없다’는 말이 당연하게 들리는 세상에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받고, 그 가능성을 현재의 기회로 만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 만해질 수 있다.

요즘 경제는 그리 좋지 않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늘 먼저 흔들리는 건 중산층과 소상공인이다. 그래서 지금 같은 때에 핀테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핀테크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도록, 시행된 지 5년 된 온투업의 제도도 한 번쯤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탁자 하나에서 시작된 금융이 지금은 손바닥 안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왔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오늘을 지탱하고, 내일을 바꾸는 작은 가능성이 담겨 있다. 우리가 믿는 그 가능성의 실현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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