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이노베이션은 버클리대의 헨리 체스브로가 2003년 개념을 제시한 비교적 새로운 개방형 혁신 방법론이다. 한국 대기업도 고갈돼 가는 내부 혁신을 보완하고자 오픈이노베이션을 적극 도입했고 점차 중견기업까지 확대되고 있다. 스타트업과의 데모데이, 업무협약(MOU)과 개념검증(POC), 파일럿에서 투자까지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가 전개되고 있지만 정작 성공 사례는 드물다. 왜 스타트업의 기술이 기존 기업 서비스나 제품과 결합해 성공하기 어려울까.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 내부의 ‘항체 반응’이다. 외부 기술이나 제품·서비스가 도입되면 기존 프로세스가 흔들리고, 내부 권한과 역할이 재편될 수 있다. 많은 현업 부서는 이를 ‘위협-항원’으로 인식해 “쓸 만은 한데 지금은 도입할 여건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항체 반응)한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담 조직이 뛰어난 스타트업을 찾아와도 실무 부서가 이를 품지 않으면 혁신은 시스템 밖에서 맴돌 뿐이다.
두 번째는 문화적 차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마치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만큼이나 다르다. 스타트업은 1주일 단위로 실험-변화(스프린트)하면서 방향을 빠르게 바꿔 움직이지만 대기업은 의사 결정에만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스타트업도 대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나 업무 방식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들의 기술을 과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무자와 관리자, 의사결정자의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해 대기업 담당자 기준에는 완성도가 너무 낮은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장기적 관점의 부재다. 많은 오픈이노베이션이 ‘쇼케이스’에서 멈춘다. 데모데이나 피칭 행사까지는 잘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제품화, 내재화 같은 후속 단계로 가기 위한 에너지와 프로세스는 아직 부족하다. 오픈이노베이션 선구자인 글로벌 기업 유니레버조차 수백 개 스타트업과 파일럿을 진행했지만 내부 연계 부족과 실행 책임 부재로 대부분 성과 없이 끝났다. 이런 일이 하도 많아 ‘파일럿 트랩’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해법은? 결과를 현업의 공으로 만들어 줘야 한다. 핵심성과지표(KPI) 반영, 인센티브 설계, 평가 연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문화적 간극을 메우기 위해 오픈이노베이션 전담 조직과 현업 간의 순환 배치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POC 이후 단계를 책임질 패스트트랙을 구축하고 실증→공동 개발→제품화→내부 시스템 연계로 이어지는 구체적 경로도 설정해야 한다. 아울러 작은 성공(스몰윈), 빠른 성공(퀵윈)으로 시작해 경험과 확신을 쌓아가는 것도 좋겠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연결에서 시작하지만 실행에서 완성된다. 외부의 문을 여는 동시에 내부의 문도 함께 열어야만 작동한다. 문을 하나 더 열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스타트업을 모아도 혁신은 늘 ‘전시’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