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기억 속 성함은 희미해졌지만, 종업식 날 내게 건네신 한마디는 마흔 해가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가난한 꿀 집의 넷째 딸이었다. 유독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사람들은 영특하다고 했지만, 실은 남의 기색을 먼저 살피는 데 익숙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다섯 남매가 북적이는 집에서 어머니는 늘 지쳐 보였다. 밥을 짓고 빨래하고 늦둥이 아들까지 돌봐야 하는 어머니에게 웃음은 사치처럼 보였다. 다섯 살 무렵, 50원짜리 과자를 먹고 싶어 어머니 소매를 붙잡았다가 미안함에 젖은 시선을 본 뒤로 나는 떼쓰기보다 참는 아이가 됐다. 내게 어머니는 웃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먼저 읽어냈다. 나는 도서부장을 맡아 학교 도서실로 이용되던 교실을 선생님 퇴근 시간까지 1년 내내 지켰다. 집에는 없는 내 책상과 책으로 가득한 교실이 마냥 좋았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를 묵묵히 지켜본 것 같다. 종업식 날,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성적표를 건네며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내심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잠시 웃으며 말씀하셨다. “미경아, 4학년이 되면 울지 말고 많이 웃어라. 네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을 때 보니 참 환하게 웃으시더라. 엄마처럼 많이 웃어라.”
순간 멍해졌다. 우리 엄마가 잘 웃는다고? 내가 알던 어머니는 한숨을 삼키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계셨다. 자식 이야기를 들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 고단한 삶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웃을 때면 입보다 눈이 먼저 웃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웃음에는 삶을 밀어내는 힘이 있었다. 여덟 명의 손주 손녀까지 다 모여도, 사진을 찍고 보면 86세인 엄마의 웃음이 지금도 제일 환하다.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는 대나무 마디가 쑥 자라나듯 나를 변화시켰다. 주눅 들고 눈물이 많아 ‘울보’가 별명이던 아이는, 많이 웃기로 결심한 4학년 때부터 달라졌다. 조금씩 당당해졌고 학교 방송반 아나운서를 거쳐 6학년 때 처음으로 여자 전교 어린이회장에 뽑혔다. 훗날 타인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성장한 동력도 거기서 비롯됐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내게 칭찬보다 훨씬 귀한 것을 주셨다. 어머니를 새롭게 보게 했고, 그 딸인 나 자신도 새롭게 보게 했다. 좋은 스승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마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마음 속으로 인사드린다. ‘선생님, 그 한마디 덕분에 저는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되뇐다. 엄마처럼 많이 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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