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AI시대, 배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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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AI시대, 배움의 의미

“제가요? 왜요? 굳이?”

요즘 MZ세대 학생들이 자주 내뱉는 말이다. 나서기 싫고, 책임지기 싫고, 감정 소모를 피하려는 태도가 이 짧은 질문들에 압축돼 있다. 이는 무책임이라기보다 자기 보호의 언어다.

“왜 이걸 해야 하죠?”

“이게 내 삶과 무슨 상관이죠?”

끊임없이 묻고, 주저하고, 때로는 멈추는 태도는 오늘날 교육이 더 이상 삶의 방향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초 미국 서부의 한 명문 사립대 교수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그녀는 미국에서도 대학 교육의 유용성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 부담이 큰 명문 대학 대신 커뮤니티칼리지를 택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많은 학생이 수만달러의 학비를 감수하면서 이 대학에 다니는 걸까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교육의 질과 명성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네트워킹 때문이죠.”

이 답은 대학 교육의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무엇을 아는가’보다 ‘누구를 아는가’가 더 중요한 공간, 삶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인맥과 기회를 얻기 위한 통로로 변질된 교육. 만약 교육이 사회적 자본을 재생산하는 장치에 머문다면 불평등은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답을 가르치던 시대를 넘어야 한다. 기술은 인간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사회는 예측할 수 없으며, 삶의 기준은 각기 다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다.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루 프레이리는 “교육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도구이거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된다”고 했다. 교육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할지, 바꾸는 힘이 될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교육은 단지 능력을 기르는 일이 아니다. 지식을 전달하기 전에 존재의 이유를 묻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누구이고, 왜 배우며,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진짜 배움의 출발점이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감수성, 공존을 위한 상상력,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지탱하는 내면의 힘. 이런 배움은 시험으로 측정할 수 없지만 결국 한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한다.

인공지능(AI)이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문제를 푸는 시대다. 더 이상 인간이 도구처럼 훈련받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즉 존재 이유를 탐구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나 아닌 세계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교육은 좋은 직장을 위한 통로가 아니다. 교육은 삶의 방향을 묻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방향이 흔들릴수록 교육은 더욱 본질에 가까워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잘하는 법’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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