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가 잘 듣는 환자를 찾는 생체지표(바이오마커) 연구는 세계 의학자 사이에 ‘핫토픽’이다.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옵디보 등이 암 환자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지만 여전히 약효를 가늠할 ‘절대 지표’가 부족해서다.
박세훈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사진)는 11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면역항암제 효과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며 “공간전사체 분석 결과와 결합해 유전자 발현 위치를 확인하는 등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역항암제를 활용할 땐 암세포 표면에 많은 특정 단백질(PD-L1) 등을 토대로 적절한 환자군을 가려낸다. PD-L1 발현율이 50% 이상이면 면역항암제를 단독으로 쓰고, 50% 미만이면 면역항암제에 화학항암제를 병용 투여한다. 하지만 아직 ‘반쪽 지표’라는 평가를 받는다. PD-L1 수치가 낮아도 면역항암제를 단독으로 썼을 때 약이 잘 들을 수 있어서다. 이런 환자에겐 쓰지 않아도 될 화학항암제를 쓰는 ‘과잉치료’(오버트리트먼트)가 된다.
박 교수는 AI로 면역항암제 효과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 2022년 항암 치료 분야 최고 학술지인 ‘미국임상종양학회지’에 발표했다. 미국 하버드대, 엠디앤더슨암센터 등의 글로벌 의학자가 주도하는 분야에서 한국 의학자가 성과를 낸 것이다. 3년 연속 이 학술지에 연구자 주도 임상 시험 결과를 발표한 ‘단골 저자’다. 로슈 자회사 제넨텍에 근무하며 신약 개발 연구에 참여한 그는 2023년 한국판 노벨의학상으로 불리는 분쉬의학상 젊은의학자상을 받았다.
박 교수가 발표한 연구는 암세포 주위에 면역세포가 많은 환자는 PD-L1 발현이 낮아도 면역항암제가 잘 들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병리조직 슬라이드를 작은 격자 눈금선으로 쪼갠 뒤 분석해 암세포에 면역세포가 있는 인플레임드타입, 면역세포가 암세포 주변부를 맴도는 이뮨익스클루디드타입, 면역세포가 없는 이뮨데저트타입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인플레임드타입의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은 4.1개월, 생존기간(OS) 중앙값은 24.8개월로 익스클루디드타입(2.2개월, 14개월), 데저트타입(2.4개월, 10.6개월)보다 길었다. 면역항암제가 약효를 내 암 재발까지 걸린 기간을 늦췄다는 의미다. 과잉치료와 과소치료를 막을 새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이 연구엔 국내 기업 루닛의 AI 기반 병리조직 분석 기술이 활용됐다. 박 교수는 “세포 기능적 특성까지 분석하는 연구의 초기 결과를 올해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루닛과 함께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근 암 치료제에 많이 쓰이는 항체약물접합체(ADC)도 이런 지표를 찾는 게 중요하다. 박 교수는 “TROP2를 표적으로 삼는 ADC라고 하면 TROP2 발현이 높으면 잘 들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HER2를 표적으로 삼는 다이이찌산쿄 엔허투도 HER2 발현이 낮으면 약효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ADC도 효과가 좋은 환자군을 가려내는 지표 연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한국 폐암 환자를 위한 맞춤형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활발히 하고 있다. 유한양행의 렉라자를 투여한 뒤 내성이 생긴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 기전을 파악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국내에선 의사가 환자를 만나는 진료 시간이 짧다. 3주에 한 번 항암 치료를 위해 잠깐 만나는 것으론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이를 극복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이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며 “환자가 항암 치료를 받는 기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삶의 질을 높이는 분야로 연구가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