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저성장 미래’, 유럽이 예고
한국 경제가 올해와 내년 모두 1%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저성장에 빠져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막연한 저성장 미래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곳이 유럽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은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4번 정도를 제외하면 성장률이 줄곧 1%대 이하에 머물렀다. 한국으로선 ‘저성장 선배’ 국가인 셈이다.
유럽 증시는 동학개미들을 울리는 국내 증시의 예고편이 될 수도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뿐 아니라 유럽 토박이 기업들마저 유럽 증시를 외면하고 있다. 이달 5일(현지 시간) 프랑스에선 시가총액 ‘톱5’에 드는 에너지 대기업 토탈에너지스가 미국 뉴욕에서 상장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증시 상장을 폐지하거나 본국 본사를 이전하는 것은 아니라며 놀란 여론을 다독였지만 먼 미래에는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독일 화학 대기업 린데는 아예 프랑크푸르트 증시를 떠났다.토탈에너지스 사례엔 유럽 저성장의 원인이 압축돼 있다. 토탈에너지스가 뉴욕으로 눈을 돌리는 건 기본적으로 유럽 증시에 워낙 활력이 없는 탓이 크다. 복잡한 상장 절차, 금융 상품 규제가 금융시장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정부의 지나친 환경 규제도 한몫했을 수 있다.
유럽 소비자들이 워낙 지갑을 잘 열지 않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2분기(4∼6월) 유럽의 저축률은 15.7%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번지기 전인 안정기엔 약 12%였다. 저축률 상승은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니 지출과 투자를 미루고 은행에 돈을 쌓아두게 된다.
경제 백년대계를 실행할 힘 절실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올해도 1.5%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은 그야말로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분위기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절감한 EU는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게 해법을 마련해 달라고 숙제를 맡겼다. ‘마리오 드라기 보고서’가 내놓은 구체적 해법을 남의 답안 엿보는 심정으로 살펴봤다. 내용은 의외로 너무 뻔했다. 산업 정책 강화, 규제 완화, 자본 시장 강화, 기술 혁신 지원 등이다. 한국에서도 질리도록 보고 듣던 대책들이다.
계엄 및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러운 요즘 다소 공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에겐 이런 백년대계를 실행할 힘이 절실하다. 어수선한 시국에서 더욱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뻔하지만 실행은 어려운 이 정책들을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 경제사에 대우그룹처럼 잊혀진 이름은 더 많아질 수 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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