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중심, 강성 보수의 표밭으로
이 도시를 포함한 독일 서부 지역은 이번 총선에서 강경 보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율이 유독 높았던 곳이다. 특히 같은 주의 뒤스부르크시 북부 지역구는 AfD 지지율이 24.6%로, 전국 지지율 20.8%를 웃돌았다. 뒤스부르크시 역시 지난해 기자가 취재를 갔던 곳이다. 당시 주민들은 기자에게 “해가 지기 전에 떠나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어두워지면 마약이나 범죄를 일삼는 이들이 모여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일대 독일 서부 지역들은 과거 석탄·철강 산업이 쇠락한 공업 지대다. 일각에선 독일의 ‘러스트 벨트’라고 불린다. 이번 총선 때 불어닥친 러스트 벨트에서의 AfD 지지 바람은 놀라운 결과였다. 당초 이 지역들은 제조기업 노동자들이 많아 노동자들의 권익을 강조하던 좌파 정당 지지율이 높았기 때문이다.독일 러스트 벨트의 변심은 기본적으로 경기 침체가 결정적이었다. 제조업이 침체되며 일자리가 줄어 살길이 막막해지니 중도 좌파 중심의 집권당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진 것. 이 불만을 의식해 집권당의 경제 정책을 비판한 강경 보수 세력이 호응을 받게 됐다.
여기에 급증한 이민자들이 경제에 대한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초창기엔 이민자들은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내각을 전후해 이민자 유입이 크게 늘었다. 경제는 나빠지는데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이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니 불만 역시 이민자에게로 향했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 ‘외국인들이 난민 혜택을 노리고 이민 온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 틈을 AfD가 비집고 들어와 지지를 확장한 셈이다.
MZ 보수들, 이민 반감 심해 AfD에 대한 지지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강경 보수 정치인들이 반(反)이민을 외치고, 지지자들이 이에 호응하며 분열이 커진 게 문제다. 정치 양극화로 인한 소모적 논쟁이 경제난 해결을 더욱 늦춘다는 우려가 나온다.
쇠락한 공업 도시들을 일찍이 관리했더라면 이 같은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 지역들도 부활을 위한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정보기술(IT), 바이오 등 다양한 신산업이 성장동력으로 논의됐다. 하지만 이 지역 석탄·철강 기업 노동자들이 신산업으로의 전환에 저항감을 보인 탓에 혁신이 늦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할 때는 미래 산업 정책 등 외적인 성장과 함께 이주민의 융화 같은 내적인 성장에도 주력해야 한다. 강경 보수 정당 집회에서 만난 10대 지지자들은 이민 문제가 갈수록 악화될 수 있음을 예고했다. 한 10대 여성은 “기성세대가 무책임하게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그 피해를 우리 세대가 뒤집어썼다”며 분노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는 고민을 해야 하는 한국에서도 젊은 유권자들이 언젠가 이런 분노를 토해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초기부터 이런 문제를 잡지 않으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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