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백색 소음' 된 트럼프의 말

2 hours ago 1

[특파원 칼럼] '백색 소음' 된 트럼프의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뒤 시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투자법을 찾아냈다. 주식과 채권값이 많이 빠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반드시 기존 정책에서 한 발짝 물러나 시장을 달래준다는 패턴을 이용하는 것이다. ‘타코(TACO·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나 물러선다) 트레이드’ ‘트럼프 풋’(증시 하락 방지 효과)으로 불리던 이 투자법은 최근 이란전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지난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며 협상을 통해 이란 전쟁을 조만간 마무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키웠다. 이틀 전만 해도 이란 발전소를 폭격하겠다고 한 그의 태도 변화에 시장은 반색했다. 그러나 이란이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자 시장은 다시 얼어붙었다. 23일 한때 전장 대비 2% 넘게 상승한 S&P500지수는 1주일 동안 3.13% 하락했다.

'트럼프 풋' 사라진 시장

짐 비앙코 비앙코리서치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 말이 이제 ‘백색 소음’이 됐다고 평가했다. 빗물 소리처럼 의미 없는 일상생활의 소음이 됐다는 것이다. 바클레이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입장 변화가 “트럼프 풋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29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을 극도로 잘하고 있다”고 했지만 시장은 흘려듣고 있다.

파키스탄 등 주변국을 통한 외교 공간이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일부 선박의 호르무즈해협 통과는 분명 긍정적 신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상황이 극적으로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주말 예멘 후티 반군이 전쟁에 가담한 것도 많은 변수를 추가했다. 호르무즈해협뿐 아니라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막히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극심한 공급망 위기에 내몰리는 한국도 보다 극단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혹스러운 것 같다. 대통령 자리에 처음으로 도전하던 1987년 그의 발언은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다. 동맹은 미국을 뜯어먹는 존재이고 호르무즈해협을 지키는 비용은 미국이 낼 필요가 없으며 이란 석유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더 큰 불확실성 대비해야

그러나 전황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섣부른 승리 선언과 최대 압박을 오가며 시장에 신호를 보내려 하지만 예전 같은 효과는 나지 않는다. 그는 이제 타코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 터다.

타코 트레이드의 전제 조건은 시장 장악력이다. 지난해 관세협상 과정에서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 입에 주목한 것은 그가 상황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바꿀 기세로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립’이 약해진다는 것은 미국 정책에 보조를 맞추려 해온 한국을 더욱 곤란한 상황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주도 무역 블록’ 구상은 매우 모호하다. 트럼프 정부 비전이 선명성을 잃으면 대미 투자를 약속한 국내 기업은 한층 불확실한 시나리오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 법·제도적 안전 장치를 마련해 가면서 움직여야 할 때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