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中 시장서 몰락한 지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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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中 시장서 몰락한 지프의 교훈

미국 자동차 브랜드 지프가 중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중국 광저우자동차(GAC)와 스텔란티스의 합작사인 GAC피아트크라이슬러가 최근 공식 파산을 선언하면서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과 외국 기업의 합작사가 문을 닫은 건 처음이다.

중국 시장에서 지프의 의미는 남달랐다. 한때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다. 2010년대 초만 해도 젊은 전문직이나 상류층 진입을 원하는 중산층에 지프는 미국식 성공을 보여주는 차량으로 통했다. 중국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영어 단어 중 하나가 지프였을 정도다.

1949년 성대하게 열린 건국 행사에서 마오쩌둥이 지프를 타고 사열식에 참석한 건 중국인들이 잊지 못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만큼 상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지프의 존재는 특별했다.

한때 '미국식 성공' 상징 브랜드

2015년 중국 현지 생산을 시작한 지프는 폭발적 인기로 2017년에 22만 대를 팔며 정점을 찍었다. 자유롭고 성공적인 삶의 표상인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입지는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판매량이 잘나가던 시절의 10분의 1인 2만 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면서 결국 40억위안(약 7730억원)이 넘는 부채만 떠안고 문을 닫게 됐다.

지프의 파산이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조짐은 일찌감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이 트리거가 된 듯하지만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변화를 외면한 게으른 안주다.

일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기차 혁명을 이룬 중국 내수 시장을 과소평가했다. 중국 브랜드 전기차엔 스마트폰에 맞먹는 온갖 편리한 기능이 하루가 다르게 추가되는데 지프의 스마트 기술 도입은 더디고 지연됐다. 웨이신(중국 모바일 메신저) 하나면 차량 구매·관리·재판매·사후서비스(AS)·문의 등이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중국 브랜드와 달리 품질 관리·AS 측면에서 소비자의 불만은 계속 쌓였다.

소비자 변화 못따라가 퇴출

무엇보다 현지 소비자 취향 변화에 둔감했던 게 치명타였다. 중국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소비자는 갈수록 세련된 디자인과 첨단 기능, 디지털 연결성 강화, 낮은 유지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들에게 해외 브랜드 차량은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중고 시장에서 첫차로 구입하는 가성비 좋은 선택지 중 하나 정도가 됐다. 지프도 내연기관 중심의 ‘올드 머니(전통 부유층) 차’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딘 혁신과 뒤처진 트렌드, 현지화 실패가 맞물려 철저하게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은 셈이다.

지프의 파산은 단순히 한 브랜드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의 말로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종의 경고음이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가전 패션 스마트폰 콘텐츠 등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다.

내수 시장은 어느 시점에든 한계에 달할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기업 성장을 위해선 해외 시장이 필수다. 이때 혁신과 현지 적응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제1의 조건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업을 기다려주는 시장은 없다. 더 이상 소비자는 브랜드 로고만 보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한때 잘 팔린 제품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비단 지프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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