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프랑스 위성통신 업체 유텔샛 주가가 파리증권거래소에서 단 하루 만에 약 80% 급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다음 날이다. 유텔샛이 스타링크를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주가를 밀어 올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구축한 저궤도 위성 시스템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드론전을 펼칠 수 있도록 한 핵심 인프라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저궤도 위성의 군사적 가치가 치솟았다. 미국은 스타링크 지원금을 기존 41억달러에서 최대 200억달러로 늘리는 법안을 마련할 정도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중국판 스타링크 ‘궈왕’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미국 중국 유럽 등이 각축을 벌이는 ‘하늘 위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마존 부족에 인터넷 혜택 주려 발명
저궤도 위성은 지구 표면으로부터 300~2000㎞ 사이 고도에 있는 위성을 말한다. 고도 3만6000㎞에 있는 기존 정지궤도 위성(GEO)과 달리 지구에 가까워 데이터 지연이 적어 고속 통신에 적합하다. 고도가 낮아 위성 하나만으로는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수백, 수천 개 위성을 군집 형태로 운용한다.
머스크 CEO가 스타링크를 창안한 건 비군사적 목적에서였다. 손으로 들고 다닐 정도로 가벼운 수신기 하나만 있으면 아마존 정글에 사는 부족도 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2022년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머스크 CEO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머스크 CEO는 “방어용으로만 사용할 것”을 못 박았다. 2023년 우크라이나 드론부대가 크림반도에 정박해 있는 러시아 잠수함을 드론으로 공격하려고 했을 때 머스크 CEO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스타링크를 끊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과 관련해 스타링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 포격을 위한 좌표 전송부터 드론 운용까지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군에 없어선 안 될 서비스”라고 분석했다. 위성 추적 웹사이트 ‘오비팅 나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스타링크는 7000개 넘는 위성을 쏘아 올렸고 앞으로 4만2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갈수록 군사적 목적으로 바뀌어
머스크 CEO가 미국 정부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스타링크 등 저궤도 위성 시스템의 군사적 가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스타링크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원해 ‘하늘 위 철옹성’을 구축하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상무부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 전역 인터넷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개발한 425억달러 규모의 ‘BEAD(광대역 형평성·접근성 및 분포) 프로그램’ 개편을 검토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개편의 핵심은 보조금 지급 규정 완화다. 미 전역 어느 곳에서든 위성 인터넷 사업자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스타링크 밀어주기 법안이다. 스타링크를 운용하는 스페이스X는 미국 정부와 2조원대 계약을 체결해 스파이 위성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있다. 스타링크 운영의 중심축이 민간 서비스 제공에서 군사용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유텔샛은 스타링크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유텔샛은 40여 개국에 위성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타링크 위성보다 높은 1200㎞ 고도에서 위성을 운용하고 있다. 스타링크는 7000개 이상의 위성을 보유했지만 원웹 위성은 700개 미만이다.
중국은 비밀리에 저궤도 위성 시스템을 확충하고 있다. 중국운반로켓기술연구원(CALT)에 따르면 중국은 10개의 궈왕 인터넷 위성을 성공적으로 예정 궤도에 진입시켰다. 궈왕의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1기당 1t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2020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제출한 계획에서 궈왕 프로젝트를 통해 총 1만3000개 위성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한국도 저궤도 위성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부터 6년간 3개 과제에 총 3200억원을 지원해 저궤도 위성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데 박차를 가한다는 구상이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