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해운업체 HMM의 화물선 ‘나무호’가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비행체’에 맞아 불이 났다. 운항 중이 아니었다. 멈춰 있어도 타격당했다.
호르무즈해협 위험은 보험료에 이미 반영됐다. 선가의 0.125% 수준이던 해상보험료율은 지난 2월 미군의 이란 공습 이후 최고 3%로 올랐다. 최근 유가 상승은 해협 봉쇄만 원인이 아니다. 보험료 급등에 일부 화주는 석유 운송을 포기했다.
보험은 위험을 넘기고 그 대가로 돈을 치르는 약속이다. 1666년 영국 런던 대화재 이후 자리 잡은 보험은 금융상품을 넘어 자본주의 운영 체계의 바탕이 됐다. 해상보험으로 무역선의 침몰 위험을 선주가 아니라 자본가가 떠안으며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공장 화재와 노동자 재해를 보장하는 산업보험은 공장 시스템을 확장했다. 자본주의 구조물 대부분이 ‘보험이 가능하다’는 토대에 세워졌다.
최근 이 토대가 세계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보험사들이 산불 위험을 감당하지 못해 시장을 떠났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보험 프로그램 ‘페어 플랜’이 민간 보험 가입을 거절당한 주택을 떠안았는데, 위험 노출액은 지난해 7240억달러(약 1076조원)로 3년 새 230% 급증했다.
지정학 충격도 보험 시스템을 계속 흔든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있던 서방 항공기 수백 대가 묶였다. 비행기 임대사들은 보험금을 청구했고 영국 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한 국가의 결정으로 항공기 수백 대가 ‘정상 자산’에서 ‘보험 손실’로 바뀐 셈이다. 이후 글로벌 보험사들은 항공 보험 인수를 줄였다.
보험은 ‘많은 사람이 조금씩 위험을 나눠 가진다’는 원리로 작동한다. 사고가 흩어져 있어야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산불 한 번에 집 수천 채가 타고, 중동 분쟁 한 번에 전 세계 해운사의 발이 묶였다. 대규모 위험이 분산되지 않고 동시에 터지면 보험 시스템은 작동하기 어렵다. 그 결과 보험은 세 방향으로 변했다. 보험료가 오르고, 보장 폭이 좁아졌으며, 민간이 감당하지 못한 위험은 정부로 넘어갔다. 그 뒤에는 재보험 시장 변화가 있었다. 위험을 뒤에서 받쳐주던 글로벌 재보험사들이 물건 인수를 주저했다.
스위스리 등 거대 재보험사들은 세계 위험의 최종 흡수자다. 이들은 자본과 위험 한도에서 보험 인수 여력을 배분한다. 대형 자연재해와 전쟁 위험 손실이 누적되면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등 다른 분야 인수 조건이 빡빡해진다. 무관해 보이는 산업까지 하나의 리스크 체계에서 연결돼 영향을 받는다.
보험 시스템이 흔들리면 장기 계약이 어려워진다. 주택담보대출이 단적인 예다. 은행이 집을 장기 담보로 인정하려면 담보가 사라질 위험을 누군가 떠안아야 한다. 그 역할을 주택보험이 한다. 보험은 미래 위험을 현재 가격으로 계산해 장기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핵심 기반 시설이다.
보험 적용이 어려워지면 시장은 짧게 움직이게 된다. 캘리포니아 산불 위험 지역에서는 수십 년짜리 고정금리 모기지에 기반한 주택 거래가 단기 매매 중심으로 재편됐다. 호르무즈해협 이용 선주와 화주는 장기 운송 계획을 짜기 어려워졌다.
한국은 이런 변화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주력 산업은 장기 자본 회수를 전제로 한다. 반도체 공장 한 곳에 수십조원이 투입되고 회수 기간은 10년이 넘는다. 한국 경제 경쟁력은 ‘유망 산업을 찾아 길게 투자할 수 있다’는 조건 위에 서 있다. 그 조건이 흔들리면 성공 방정식도 흔들린다.
글로벌 재보험 시장이 인수를 거절하면 한국 장기 프로젝트는 자금 조달부터 막히기 쉽다. 최근 한국 선사가 국내 보험사에 가입한 호르무즈해협 통항 보험을 글로벌 재보험사가 인수하지 않고 있다. 재보험 한도가 줄면 국내 보험사도 갱신을 중단한다. 한국 선박은 움직일 수 없다.
보험이 멈추는 곳에서 자본도 멈춘다. 30년 뒤 위험을 인수할 곳이 없으면 30년짜리 자본도 조성되지 않는다. 자본의 시간이 줄면 산업의 시간이 줄고, 산업의 시간이 줄면 국가의 시간도 짧아진다. 한국이 반도체와 자동차처럼 장기 회수 산업에 미래를 건 이상 보험업계 변화는 남 일이 아니다. 정부도 ‘마지막 보험사’가 돼야 한다. 미국도 최근 원유 운송용 200억달러 재보험 지원안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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