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월간남친과 청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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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블랙핑크 지수, 배우 서인국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 남친'(극본 남궁도영, 연출 김정식)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그룹 블랙핑크 지수, 배우 서인국이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 남친'(극본 남궁도영, 연출 김정식)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서 만날 수 있다. 레지던트, 검사, 아이돌 스타 등 직업도 다양하다.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의 기본 설정이다. 월간남친은 드라마 속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의 이름이다. 구독료가 월 50만원으로 꽤 비싸지만 데이트 상대 선택지가 900명에 이른다. 최근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에서 한국 1위, 글로벌 1위에 올랐다.

부서 회의 시간에 어쩌다가 이 드라마 얘기가 나왔다. 50대 부장이 젊은이의 트렌드가 궁금했는지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 뭐냐고 물었다. 30대 초반 사원의 답이 흥미로웠다. “가상 연애에선 상처를 안 받잖아요.” 드라마 속 가상 연인이 그렇게 말한단다. “나는 절대로 너에게 상처 안 줘.”

이성 관계에서 받는 상처는 꽤 깊고 아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상 연애라니. 어쩌다 우리 젊은이들이 감정적 상처가 두려워 가상 연애 스토리에 빠져들게 됐을까. 그 배경에 대해 생각하던 중 한 초등학교 교사가 전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5년 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 아이가 축구 경기 도중 넘어져 크게 다쳤다고 한다. 아이 부모가 자기 아이를 넘어뜨린 아이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하겠다고 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교장이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축구 금지. 현재 근무 중인 학교는 운동회를 무승부로 끝낸다고 한다. 승패가 갈리면 진 편의 아이들이 패배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같은 이유로 졸업식에선 아무에게도 상을 안 주거나 모든 학생에게 상을 준다. 아이가 다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토요칼럼] 월간남친과 청년 정책

하지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은 역설적으로 상처에 약한 아이들이 돼 버렸다. 미국 탐사 저널리스트 애비게일 슈라이어는 <부서지는 아이들>에서 미국 Z세대의 40%가 정신건강 치료를 받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왜 우리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무력하고 겁 많은 세대가 됐을까”라고 묻는다.

교육 현장의 모습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비슷한 종류의 집착이 정부의 청년 정책에서도 엿보인다. 학생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학교와 교사의 지상 과제가 된 것처럼 정부 정책도 청년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39세 이하 청년이 적금에 가입하면 정부가 납입액을 얹어 준다. 청년미래적금이다. 서울 역세권에 집을 지어 시세의 반값에 공급한다. 청년안심주택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선 청년 기본소득 공약까지 나왔다. 이미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무상 복지’의 혜택을 받은 세대다. 지난 1월부터 고용노동부는 ‘쉬었음’ 청년을 ‘숨고르기 청년’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쉬었음이라는 말이 게으르거나 무기력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서라고 한다. 청년의 감정까지 챙기는 세심한 배려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의 대상 연령은 29세에서 34세로 높아졌고, 49세까지 청년 범주에 집어넣는 지방자치단체도 여럿 있다. 정부가 평생을 책임져 줄 기세다.

취업난과 주거난 등 청년이 처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와 교사가 아이를 평생 책임질 수 없듯이 정부가 청년을 보듬는 데도 한계가 분명하다. 청년 일자리 예산은 늘어나는데 청년 일자리는 줄어들고, 청년 임대주택을 늘려도 월세는 계속 오르는 현실이 말해 준다. 경제 원리가 그렇다.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거두면 경제 활력이 떨어져 일자리 창출은 더 힘들어진다. 청년 주거난이 문제라면서 임대주택 공급자인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보다는 첩첩이 쌓인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 나을 텐데 그런 목소리는 묻힌다.

따지고 보면 청년은 정부의 보호가 가장 필요 없는 계층이다. 정부가 보태주지 않아도 장기간 복리 효과를 누리며 자산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이 청년이다. 가장 건강하고 가능성이 많은 사람, 상처를 입어도 회복할 힘과 시간이 있는 사람을 그저 보호하기만 해야 할까.

[토요칼럼] 월간남친과 청년 정책

월간남친의 주인공 서미래는 갈림길에 선다. 상처받을 가능성 0%의 안락한 가상 세계에 머물 것인가, 상처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진짜 사랑을 찾아 나설 것인가. 청년 정책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마음껏 상처받으며 삶을 개척하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기회가 아닐까. 청년, 그리고 책임감 있는 기성세대가 함께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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