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한만혁 기자] 자율규제란 정부나 법률이 아닌 민간이 스스로 기준을 정하는 규범 체계를 말합니다. 금융, 의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법률이 세세하게 규율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죠. 디지털자산(가상자산)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공정 거래, 이용자 보호 등 다양한 부분의 자율규제가 제정 및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자산 시장은 역사가 짧고 세부 규제가 다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율규제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디지털자산 시장의 자율규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처=셔터스톡
법률보다 빠른 시장, 자율규제가 대응
은행, 증권, 보험 등 전통 금융 산업은 수십 년에 걸쳐 쌓인 촘촘한 법체계 아래에서 운영됩니다. 하지만 디지털자산 시장은 역사가 짧습니다. 그만큼 관련 규제도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시행 중인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두 가지입니다. 이들 법률은 자금세탁방지(AML), 불공정 거래,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디지털자산의 발행, 유통, 공시 등 전체 생태계를 아우르지는 못합니다. 시장은 존재하는데 법률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죠. 이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 규제 공백이 존재합니다.
이런 규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자율규제입니다. 자율규제는 속도 면에서도 법률보다 유리합니다.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려면 입법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자율규제는 업계가 자체적으로 기준을 논의하기 때문에 법률보다 신속하게 제정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루나·테라 사태가 낳은 DAXA, 자율규제 주도
현재 디지털자산 시장의 자율규제는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DAXA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5대 원화 거래소가 2022년 6월 출범한 공동협의체입니다.
DAXA가 출범한 배경에는 2022년 5월 발생한 테라·루나 사태가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의 가격이 붕괴하면서 루나(LUNA) 가격이 동반 하락해 단 며칠 만에 수십조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이용자가 피해를 입었죠.
당시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은 2021년 3월 시행된 특금법 개정안뿐이었습니다. 자금세탁방지와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가 주요 골자였던 특금법 개정안은 실제 거래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 행위나 이용자 보호에 대한 규제는 없었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용자 보호를 위한 민간 차원의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용자 보호 규제가 만들어지기 전 민간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이용자 보호책을 마련하고자 DAXA를 출범했습니다.
디지털자산 자율규제를 주도하는 DAXA / 출처=DAXA
DAXA, 출범 이후 다양한 자율규제 마련
DAXA는 출범 이후 다양한 영역의 자율규제를 제정했습니다. DAXA는 5개 거래소 담당자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을 통해 안건을 충분히 논의하고 금융당국의 자문을 거쳐 자율규제안을 마련합니다.
DAXA가 처음 발표한 자율규제는 2022년 10월 시행한 거래지원(상장) 심사 공통 가이드라인입니다. 디지털자산의 내재적 위험성, 기술적 위험성, 사업 위험성을 평가하는 세부 항목을 마련해 거래소마다 달랐던 상장 기준을 통일했죠.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자산이 손쉽게 상장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2023년에는 스테이블코인, 해외 거래소 발행 디지털자산 등 유형별 위험지표를 추가로 제정해 디지털자산 특성에 따른 이용자 보호가 가능하게 했습니다. 거래소마다 제각각이던 내부통제 기준을 표준화해 자금세탁방지, 고객신원확인(KYC) 등 법령 준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컴플라이언스 매뉴얼도 발표했습니다.
2024년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에는 법률이 큰 틀의 기준을 제시하면 DAXA가 그 틈을 세부 기준으로 채워 규제 공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자율규제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거래지원 심사 자율규제안을 전면 개정하고, 표준 내부통제기준과 표준광고규정을 발표했습니다. 이상거래 상시감시 모범규정도 마련했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장감시 의무를 부과했지만 이상거래 적출, 심리, 통보 기준과 감시 조직 운영에 대한 세부 기준은 법률에 담기지 않았는데, DAXA가 이 부분을 자율규제로 표준화했습니다.
이 외에도 ▲거래소가 이용자 예치금에 적용하는 이율의 산정 기준과 지급 절차를 구체화한 이용자 예치금 이용료율 산정 모범규준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와 IT 내부통제 기준, 피해 보상 원칙 등을 규정해 전산 장애 발생 시 이용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전산시스템 운영 및 이용자 보호 모범규준 ▲비영리법인 가상자산 현금화 관련 가이드라인 ▲법인 고객에 대한 강화된 고객확인 이행 가이드라인 ▲거래소 간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가이드라인 ▲기존 표준광고규정을 광고·홍보 행위 전반으로 확대 개정한 광고·홍보 행위 모범규준 등 다양한 영역의 자율규제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DAXA는 자율규제 마련에 머물지 않고, 국내외 정책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디지털자산 정책자료집도 정기적으로 발간합니다. 미신고 VASP 제보 창구 개설, 디지털자산 연계 금융 사기 방지 캠페인, 이용자 보호를 위한 교육 콘텐츠 제작, 업계 이해도 향상을 위한 교육 세미나 등 이용자 보호와 건전한 산업 발전을 위한 활동도 함께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율규제 실효성을 높이려면 자율규제기구에 대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 출처=셔터스톡
자율규제 실효성 위해서는 자율규제기구의 법적 근거 필요
자율규제는 법률의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합니다. 자율규제를 통해 규제가 더 촘촘해지고 시장은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디지털자산 시장에는 아직 미비한 규제가 많은 만큼 자율규제가 담당해야 할 역할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디지털자산 시장의 자율규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 참여자가 자율규제를 어겨도 제재할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법적 지위가 보장된 자율규제기구가 없기 때문이죠. 전통 금융 시장의 경우 법적 지위가 보장된 자율규제기구가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자산 시장에도 법적 지위가 보장된 자율규제기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용자 보호 강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자율규제가 강화될수록 규제 명확성이 높아지고, 부실 디지털자산으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래 안정성이 강화되면 이용자는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됩니다. 안정적인 디지털자산 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죠. 하루빨리 디지털자산2단계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재개되고, 해당 법안을 통해 자율규제기구의 법적지위가 명확히 규정되길 기대합니다.
IT동아 한만혁 기자 (m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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