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핵심 장면과 그 순간의 감정을 단번에 떠올리게 하는 데에는 음악만 한 게 없다. 여러 악기 소리의 결합과 시원시원한 배우의 목소리는 공간의 온도를 바꾸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황홀한 경험이 무한대로 펼쳐졌다. 뮤지컬 배우 카이(KAI)가 마련한 '비밀의 궁전'에서다.
카이는 지난 주말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우리WON뱅킹홀에서 단독 콘서트 '카이 인 더 히든 팰리스(KAI in the HIDDEN PALACE)'를 개최하고 팬들과 만났다.
이번 공연의 콘셉트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세운 비밀스러운 궁전이었다. 웅장한 빅밴드의 연주와 함께 궁전의 문이 열리자 하얀색 슈트를 입은 왕자 같은 자태의 카이가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의 넘버 '사랑이야'를 부르며 등장했다. 몽환적인 무드와 함께 로맨틱한 곡이 흘러나와 단숨에 뮤지컬의 한 장면 속으로 이동한 느낌이 들었다.
카이는 "숨겨진 성에 오신 걸 환영한다. 다소 거창한 제목을 붙여봤다"면서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비밀의 공간에서 비밀스러운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호응을 끌어냈다.
달콤한 느낌으로 시작한 공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했다. 카이는 '미녀와 야수'의 '에버모어(EVERMOR)'에 이어 '프랑켄슈타인'의 '너의 꿈 속에서', '웃는 남자'의 '모두의 세상'을 선곡해 몰입감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넘버의 색깔이 점진적으로 짙어지게 배치해 각기 다른 작품의 넘버를 노래하면서도 마치 하나의 스토리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흔들림 없는 애티튜드에 '뮤지컬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절로 떠올랐다.
특별한 무대도 많았다. 새벽의 광명을 표현했던 오프닝 배경이 그윽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의 태양으로 변한 가운데, 카이의 1집 앨범 수록곡 '벌' 무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가창을 시작한 카이는 '사랑은 결국 사랑을 찾아온다', '울게 하소서'까지 집중력 있게 노래했다. '울게 하소서' 무대 때는 '팬텀' '한복 입은 남자'에서 함께 호흡한 바 있는 아역배우 문선우가 깜짝 등장해 박수받았다.
둘째 날 게스트로는 정선아가 참석해 힘을 실었다. 두 사람은 뮤지컬 '드라큘라'의 넘버 '휘트비 베이(Whitby Bay)', '러빙 유 킵스 미 어라이브(Loving You Keeps Me Alive)'로 멋진 듀엣을 선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황태자, 왕자님 같다", "뮤지컬계 최고의 디바"라고 극찬해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정선아는 전날 '렘피카' 첫 공연을 마친 상태였다. 이에 카이는 특별히 더 큰 고마움을 전했고, 정선아는 '우먼 이즈(Women Is)'라는 넘버를 불러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전날 게스트는 조정은이었다.
'화이트 카이'에 이어 '다크 카이'의 매력도 가감 없이 펼쳐졌다. 카이는 비장함과 독기 오른 모습이 관건인 '몬테크리스토' 넘버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을 이전과는 확 다른 이미지로 소화했다. 이어 강인함이 돋보이는 '엑스칼리버'의 '결코 질 수 없는 싸움', 처절한 외로움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프랑켄슈타인'의 '난 괴물'까지 압도적인 가창력과 연기를 선보여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난 괴물'을 부를 땐 마치 실제 뮤지컬 무대인 듯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카이의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독일어 가창도 관람 포인트였다. 카이는 '엘리자벳'의 '마지막 춤', '레베카'의 '신이여',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을 유창하게 독일어로 불러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열정적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카이의 모습에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이성준 음악감독은 빅밴드를 이끌며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아주 오랜만에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간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느낀 감동과 여운이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자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과분한 욕심을 부려 봅니다. 이런 욕심을 부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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