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의치한(의대·치대·한의대) 돌고 그다음에야 이공계입니다.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겠습니까?”
20~2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서 만난 한국 엔지니어가 한 말이다. 대만이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그는 “엔지니어가 대우받지 않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한탄했다.
그가 대한민국 미래를 비관한 것은 엔지니어가 국력의 원천이 되는 시대라는 진리를 겪으면서다. “AI 패권 경쟁에서 엔지니어는 국력의 기반이 되는 군사와 같다. 일단 입대하는 사람(인재 풀)이 우수하고 많아야 하며 군인 개개인의 사기도 넘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만은 반도체 최강국을 넘어 이제 글로벌 AI산업의 ‘전초기지’로 부상 중이다. 대만에 AI 엔지니어 1000명을 고용할 ‘글로벌 연구개발(R&D) 본사’를 세우기로 한 엔비디아나 대만 R&D센터를 두 곳으로 늘리기로 한 세계 AI 가속기 2위 업체 AMD가 이를 증명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대만을 찾는 것은 막강한 엔지니어 풀 때문이다. 대만은 주요 국립대에서 매년 반도체 석박사급 인력 500명을 쏟아낸다. 인구는 한국의 절반이지만 반도체 석박사 배출량은 두 배다.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24년 세계 인재 순위’에서 대만이 한국 중국 일본을 제치고 18위를 기록한 배경이다.
대만의 성공이 단순히 인력 배출 수로만 이뤄지진 않았다. 엔지니어를 최고로 대우하는 문화가 두 번째다. 대만 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TSMC 비관리직 직원의 중위 연봉은 1억470만원으로, 그해 대만 의사 평균 소득(9700만원)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이후 50% 더 뛰어 지난해 TSMC 중위 연봉은 1억5000만원이 됐다.
대만 산업계엔 “잘 키운 엔지니어 한 명이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대만 반도체 대부’ 모리스 창은 미국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와 TSMC를 설립해 지금의 반도체 강국을 만들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 AMD CEO는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성공해 ‘고향’의 AI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AI 활황에 힘입어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대만의 내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6319달러로, 한국(3만5880달러)을 역전한다. 이를 인용한 국내 정치인들은 “대만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하냐”는 세상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판이다. ‘한국판 엔비디아’ ‘한국판 TSMC’를 논하기 전에 한국의 인재 환경부터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