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탄소 줄이려니 안전이 문제" 딜레마 빠진 건자재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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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탄소 줄이려니 안전이 문제" 딜레마 빠진 건자재업계

“탄소 배출을 줄이려 하는데 안전이 문제 된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한 시멘트업체 대표가 최근 이런 고충을 토로했다.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을 가열할 때 탄소 배출이 많은 유연탄 대신 폐합성수지 같은 가연성 순환자원을 쓰는데, 여러 난관에 봉착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현실적인 국내 환경 기준이 문제로 지목됐다. 시멘트업계는 정부의 탄소 배출 저감 유도 정책에 맞춰 가연성 순환자원 사용량을 늘렸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염화물이 골칫거리였다. 염화물이 많이 들어간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가 한국산업표준(KS)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애먼 레미콘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 레미콘 회사들은 잇달아 ‘출하 정지’ ‘KS 표시 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받고 있다. 콘크리트 염화물의 73%를 차지하는 시멘트 염화물 때문에 KS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지난 29일 열린 ‘시멘트·콘크리트 염화물 기준 개선 필요성과 방향성 포럼’에서도 이런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김영엽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연구원은 “시멘트 염화물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시멘트를 받아 쓰는 레미콘업계만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KS 기준을 정하는 국가기술표준원은 시멘트 염화물 규정을 따로 두지 않고 콘크리트 염화물 기준만 정하고 있다. 그것도 철근 콘크리트를 쓸 때 ㎥당 염화물 총량을 0.3㎏으로 제한하는 ‘일본식 총량제’를 쓰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유럽 등은 시멘트 투입량에 따라 염화물 비율을 제한하는 ‘종량제’를 채택한다. 시멘트와 레미콘 업계 모두 콘크리트 주원료인 시멘트의 염화물 비율을 규정하는 ‘유럽식 종량제’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 KS 품질 기준을 유럽식 종량제로 바꾸고,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당 염화물 비율을 0.15% 이하로 정하면 결과적으로 콘크리트 ㎥당 염화물이 0.3㎏에서 0.45~0.6㎏으로 늘어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염화물 기준 완화를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KS 기준을 유럽식 종량제로 변경하면 철근 콘크리트에 염화물이 지금보다 많이 들어가 철근 부식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가뜩이나 최근 발생한 건물·교량 붕괴 사고의 주원인으로 철근 부식이 지목받고 있다. 정부 역시 안전을 무시하고 업계 이익만 대변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염화물 규제 완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정부와 업계는 안전과 탄소 저감에 문제가 되지 않는 합리적인 염화물 기준을 마련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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