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종주국 넘은 'K원전'…생각만해도 아찔한 '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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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종주국 넘은 'K원전'…생각만해도 아찔한 '탈원전'

“이번 원전 ‘역수출’은 단순히 계약 하나를 따낸 수준이 아닙니다.”

지난 17일 미국 미주리대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 초기설계 계약체결 간담회에서 만난 원전업계 관계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이 한국에 원자력 기술을 전수한 지 66년. 그 기술을 바탕으로 자립한 한국이 미국에 원전 기술 역수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단순 기술 독립을 넘어선 기술 우위의 증거라는 얘기가 간담회 곳곳에서 나왔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MPR사로 꾸려진 ‘K-컨소시엄’은 국제 경쟁입찰에서 아르헨티나 미국 등 7개 컨소시엄을 제치고 계약을 따냈다. 고밀도 우라늄 핵연료 분야 등의 뛰어난 기술력 덕분에 미국 뉴스케일 등 쟁쟁한 업체를 따돌리고 종주국 시장까지 뚫었다. 한국은 원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완전 자립형’ 국가다. 미국이 설계한 시스템을 자체 설계·운전·정비·수출까지 해내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번 역수출 달성을 두고 원전 전문가들은 한·미의 공생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원자력은 인공지능(AI) 시대 필수 전력원으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라는 ‘전기 먹는 하마’를 운용하려면 안전성을 갖춘 차세대 원전 건설이 필수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설계 기술에선 여전히 미국이 앞서고 있지만 이를 실제 구현할 제조 역량은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미국으로선 선택지가 마땅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외에도 핵융합, 합성생물학 등 다양한 첨단산업에서 한국은 미국의 제조 파트너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K조선의 활약에서 이미 입증되고 있는 ‘스토리’다.

간담회에 참석한 주요 관계자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불과 몇 년 전 탈원전의 혼란이 떠올랐다.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한 당시의 정책이 지속됐다면 66년 만의 쾌거라는 한국 원전 역사의 한 장면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일본 사례는 한 번의 실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한때 원전 강국으로 불리며 한국과 경쟁했던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산업 생태계 전체가 무너졌다. 일본의 원전 연구자가 서울대 공대 원자핵공학과의 교수로 와 있을 정도다. 더 이상 일본에선 원전과 관련한 원천 기술을 연구할 유인이 없다는 의미다.

탈원전 정책이 남긴 상처는 지금도 업계 곳곳에 남아 있다. 세계가 다시 원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외면하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 기술은 꾸준히 쌓아야 앞설 수 있다. 단 한 번의 방심이 66년 만의 역사를 또다시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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