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입법 성공률' 19%의 의미…'아니면말고식' 인터넷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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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입법 성공률' 19%의 의미…'아니면말고식' 인터넷 규제

“국가 지도자가 두 팔 걷고 밀어붙여도 따라잡기 어려운데 곳곳에 규제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난 23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부작용에만 집중하는 국내 규제 환경 속에선 토종 빅테크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불필요한 규제에 발목 잡힌 국내 업계는 글로벌 경쟁에서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날 협회는 ‘2024 인터넷 산업규제 백서’를 공개했다. 총 225쪽 분량의 백서에는 인터넷산업을 둘러싼 법·제도 이슈와 산업 현장의 목소리가 촘촘히 담겼다.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규제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골자다.

인터넷기업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인터넷산업 매출은 635조원으로 2022년 592조원 대비 7.2% 증가했다. 양적 성장과 달리 법·제도 정비는 뒷걸음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인터넷산업 관련 법안 492건 중 실제 법률로 제정된 건은 95건(19%)에 불과했다. 전체 국회 평균 법률 반영률(31%)보다도 훨씬 낮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법안 발의자의 산업·기술 이해도가 낮아 산업 현실과 괴리된 규제가 마구잡이로 쏟아졌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지능(AI) 관련 규제다. 한국은 이르면 내년부터 세계 최초로 AI 규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2026년 시행을 목표로 AI 법을 단계적으로 준비 중인 유럽과 대비된다. 산업계는 시행령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규제부터 적용하려는 시도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장은 “아직 규제의 구체적 범위나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는데 법부터 발효되면 기업들은 시도조차 못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규제가 늘 나쁜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법무부가 구글의 독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사업 분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독점을 막아야 새로운 기업이 출현할 수 있어서다. 반(反)독점은 시장경제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필수 장치다. 국내에서도 네이버나 쿠팡 등 특정 플랫폼이 시장을 독식한다면 규제의 칼을 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규제보다는 육성책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읍소다. 오픈AI는 미 법무부의 증인으로 나서 구글이 만일 크롬을 매각해야 한다면 이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오픈AI가 검색 시장까지 장악하면 국내 토종 업체들은 고사할 가능성이 높다. AI 등 급격한 기술 기반 변화 시기에는 이에 걸맞은 민첩한 제도 설계가 필수다. “유럽도 미·중 빅테크에 맞서려 하는데 왜 우리만 규제 1등을 고집하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말이 귓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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