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일관성과 실효성 모두 놓친 가상자산 ETF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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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일관성과 실효성 모두 놓친 가상자산 ETF 정책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합니까.”

한 자산운용사 상장지수펀드(ETF) 담당 임원은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서두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가상자산 관련 상장 종목을 ETF 상품에 자유롭게 편입하는 일을 막고 있다”면서 이같이 토로했다. 똑같이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에 베팅하는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정반대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큰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위해 자산운용사들과 의견 수렴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활발해지면서다. 운용사들도 이에 맞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기초자산 구성 방식과 운용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가상자산 ETF에 대한 금융당국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뀐 듯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금융당국은 최근 일부 운용사를 대상으로 ‘코인베이스와 서클 등 가상자산 투자 기업을 ETF에 과도하게 편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 운용사는 당국 경고 이후 ETF 포트폴리오 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서클을 전량 매도했다. 높은 서클 비중을 매력적이라 느껴 투자한 투자자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운용사가 떠안아야 했다.

가상자산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신규 ETF 출시도 가시밭길이다. ETF 이름에 ‘가상자산’ ‘코인’ 같은 단어를 쓸 수 없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2017년 금융당국이 발표한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이후 이렇다 할 지침이 나오지 않아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규제는 아직도 8년 전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현물 ETF부터 내놓는 일도 순서상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가상자산 관련 상품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ETF가 먼저 나온 뒤 관련 선물 ETF, 현물 ETF 순서로 시장에 등장했다. 기업 주식처럼 제도적 기반을 갖춘 상품에 투자하는 ETF를 먼저 허용하고, 새로운 규제 기반을 필요로 하는 가상자산 현물 투자 허용에는 보수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한국은 반대로 가상자산 현물 ETF 관련 논의만 활발하고, 선물이나 가상자산 기업 관련 투자 상품 논의는 뒷전인 형국이다.

가상자산 관련 규제가 혼선을 빚는 사이 국내 투자자의 자금은 국경을 넘고 있다. 국내 투자자가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상장사인 스트래티지에 투자한 금액은 16억1379만달러(약 2조2350억원)에 달한다. 당국의 가상자산 규제 목적이 투자자 보호에 맞춰져 있다면 일관성도 없고, 실효성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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