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자석탄에 SOS 쳤다가 배신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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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민자석탄에 SOS 쳤다가 배신한 정부

2011년 9월 15일. 전국 곳곳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공장 가동도 차질을 빚었다. 이른바 ‘9·15 대정전’이다. 당시 정부는 여유 전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민간 자본까지 끌어들였다.

그 결과가 2013년 확정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삼성물산, 포스코인터내셔널, GS, SK 등은 정부 계획을 믿고 시장에 들어왔다. 이들이 동해와 강릉, 삼척, 고성에 구축한 석탄화력발전 설비 규모는 약 7기가와트(GW). 투입한 자금만 18조원에 달한다.

당시 기업들이 믿은 것은 정부가 운영하는 ‘총괄원가보상제’였다. 국가 전력망에 필요한 설비를 지으면 투자비와 운영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해 장기간 보전해주는 제도다. 기존 발전공기업은 이 체계 안에서 비용을 정산받았다.

하지만 민간 회사의 시장 진입 이후 환경은 급변했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국내 탈석탄 정책이 본격화됐고, 이재명 정부는 석탄발전 폐지 시점을 2040년으로 앞당기겠다는 방침까지 내놨다.

정책 방향을 바꿨어도 민간 사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는 지켜야 한다. 민간 석탄발전사와 전력당국은 발전소 투자비를 얼마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10년째 갈등 중이다. 업계가 주장하는 미인정 투자비만 2조원에 달한다. 필수 예비품 구매비용은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기업과 같은 설비를 운영하는데 정산 기준만 다르다”는 불만이 나온다.

정작 정부는 필요할 때마다 석탄발전을 다시 찾고 있다. 중동 전쟁 이후 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석탄발전 상한 규제를 완화했다. 동해안의 민자 석탄발전소엔 이마저도 그림의 떡이다. 송전망 부족으로 가동률이 20%대에 묶여 있어서다. 전력 안보를 이유로 민간 투자를 끌어들여 놓고, 정작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망조차 제때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화력발전의 역할도 중요하다. 설비를 껐다 켰다 하기 쉬운 유연함 때문이다. 정전 이후 전력망을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석탄발전은 필수다. 정부가 최근 일부 석탄발전을 ‘안보 전원’으로 남겨두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 말을 또 믿을지는 의문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정부의 SOS를 받고 시장에 들어온 사업자를 이렇게 ‘서자’ 취급하는 것은 한국 에너지 정책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며 “정부 말을 믿고 투자했다가 정책이 바뀌면 손실은 민간이 떠안는다는 기억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산업은 조 단위 규모가 들어가는 초장기 사업이다. 정책 신뢰가 무너지면 투자도 멈춘다. 그 대가는 결국 국민과 산업계 전체가 떠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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