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라 스칼라 논쟁'보다 중요한 공연 노하우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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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라 스칼라 논쟁'보다 중요한 공연 노하우 축적

내년 개관하는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공연 ‘오텔로’를 105억원에 초청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1778년 공연을 시작한 라 스칼라 극장은 지구촌 오페라 성지로 불린다. 한국의 대표적 지휘자 정명훈이 내년부터 음악감독을 맡는 곳이다. 오텔로는 베르디가 73세 때 발표한 명작으로 1887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논란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부산시민 네트워크’가 5회 공연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쓰는 데 반대한다며 그 돈을 차라리 지역 예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불거졌다.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기념해 세계적인 공연 관람 기회를 줄지, 지역 오페라 자생력 확보에 자금을 투입할지는 6·3 지방선거 등을 통해 부산 시민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수십 년간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왜 우리는 여전히 선진 제작 시스템이라는 무형 자산을 축적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공연 행정이 지나치게 단기 성과에 매몰돼서다. 사업이 잘됐는지 판가름하는 기준이 티켓 판매율과 화제성에 머물렀다. 해외 대형 프로덕션이 다녀가도 무대 뒤 제작 공정과 기술적 노하우가 기록되지 않았다.

수많은 이벤트의 경험이 국가 자산으로 남지 못한 채 몇몇 담당자 개인의 역량 개발로 끝났다. 사람이 바뀌면 노하우가 함께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래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행사 성적표에 문화예술 저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항목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공연계는 자생적 동력 없이 공공 예산과 기업 후원 등 외부 수혈에만 목매는 ‘천수답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각에선 공연예술에 제조업식 표준화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제작 매뉴얼과 운영 시스템 구축은 반드시 필요하다. 창의성이라는 ‘꽃’은 견고한 시스템이라는 토양이 뒷받침돼야 피울 수 있다. K팝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던 근간도 제작부터 글로벌 유통까지 전 과정이 체계화됐기 때문 아닌가. 따지고 보면 라 스칼라도 결국 운영 시스템 덕분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이다.

100억원이 넘는 돈을 오텔로 초청 공연에 쓰든, 지역사회 오페라 경쟁력 확보에 쓰든 그 효과와 교훈을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도 오페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의지로 책임자를 정해놓고 매뉴얼을 쌓아가야 한다.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면 어떤 결정이든 도움이 될 것이다. 제작 매뉴얼이 지속적으로 쌓일 때 비로소 공연예술은 이벤트를 넘어 산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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