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韓 외교력의 민낯 보여준 '대미 아웃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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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韓 외교력의 민낯 보여준 '대미 아웃리치'

지난 며칠간 미국 워싱턴DC 샐러맨더 호텔은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2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민간 경제 사절단이 참여한 행사가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개최됐다. 21일엔 최종현학술원의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가 이틀 일정으로 열렸다. 지난달에는 한국경제인협회의 한미재계회의가 개최되고, 이달 초엔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등이 워싱턴 싱크탱크들을 한 바퀴 훑었다. 지난주에는 여야 국회의원이 방미단을 꾸려 워싱턴을 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한국은 어떻게든 트럼프 정부와 연이 닿을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운신에 한계가 있는 정부를 대신해 정치인과 기업인이 미국 접촉 면적을 넓히려는 노력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나름대로 성과도 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19일 한국 기업과 만난 자리에서 조선 유지·보수·정비(MRO), 원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6대 분야에서 한·미가 협력할 것이 많다는 설명에 공감하며 “20여 개국 사절단을 만났는데 한국 사절단의 내용이 가장 스토리가 좋다”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한국이 트럼프 1기 이후 미국에 1600억달러를 투자한 점과 한국의 미국 상품 수입액이 급증한 점 등을 내세운 결과다.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트럼프 1기 때 활동했지만 현재는 영향력이 없는 인사들을 만나러 줄을 선다거나, 한국에 우호적인 민주당계 사람을 만나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아웃리치(대외 소통)’ 활동은 실제 결실을 보기는 쉽지 않다. 가기 전부터 ‘장관급과의 면담’ 등을 언급하며 기대만 부풀렸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대한상의와 20대 그룹 CEO로 구성된 방미단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등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상자들이 줄줄이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러 플로리다로 가는 바람에 미팅이 성사되지 못했다.

일부 정치인이 미국행 표부터 끊고 나서 사흘~나흘 후 면담이 되느냐고 조르는 행태는 낯이 화끈해지는 대목이다. 미국 의회의 한 관계자는 “며칠 전 요청은 거의 들어주기 힘들고, 그런 촉박한 요청 자체가 결례”라고 지적했다.

이런 관행은 오랫동안 무언가에 공을 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고 손쉽게 성과만 추구하려는 한국 외교의 민낯이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이런 일에 미리 돈을 쓰고 미리 관계를 맺고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일은 소홀히 한 결과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잘 모르면서 한국에 보기 좋은 모습을 보이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엄청난 로비 파워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한국과 외교력 차이가 너무 뚜렷하다”는 의회 관계자의 지적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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