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급이라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1〉

7 hours ago 1

(생략)

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소포는 오지 않고

내 마음속 치욕과 앙금이 많은 것도 재밌어서
나는 오늘도
아무리 희미해도 상관없습니다.

(생략)―김경미(1959∼ )

현실 세계를 살다 보면 사람 자체가 싫어질 때가 있다. 고운 말을 전해도 비수의 말로 대답하는 사람. 꽃처럼 바라봐도 독처럼 비난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꼭 면도날 같다. 사건 없이 스쳐 지나간대도 남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럴 때 시의 세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상처 받으면 사람을 만나지 말고 시를 만나길 추천한다. 여기와는 달리 다정한 평행 세계가 있고 마치 거기 도착한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그곳에는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상처를 주기보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 먼저인 세상. 행복을 자랑하지 않고 침묵을 사랑하는 세상.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고 작약과 빗소리를 기다리는 세상. 이 시는 그런 세상으로 함께 떠나준다. 이 시인은 그런 세상을 같이 걸어준다. 시도 의도하지 않았고 시인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시적 경험이 가슴을 파고든다. ‘마음이 힘들 때는 시와 상담하세요.’ 약국이나 병원에 있을 법한 말을 이 시집의 앞에 크게 써놓으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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