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의 자본시장 직설] 코너스톤 제도가 7년째 헛도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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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철의 자본시장 직설] 코너스톤 제도가 7년째 헛도는 이유

기업공개(IPO) 제도 개편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정책이 있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다. IPO 증권신고서 제출 전 장기 보유 등의 조건을 확약한 기관투자가에게 공모주 일부를 우선 배정하는 방식이다. 공모가 형성 과정에서 진정성 있는 기관 수요를 우선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허수 주문을 걸러내 공모가 왜곡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2007년 홍콩 증시에서 처음 도입된 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요국은 물론 미국 나스닥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보편화된 방식이다.

한국거래소가 한국 시장에도 코너스톤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 게 2018년이다. 이후 금융당국이 내놓는 IPO 대책에 매번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7년 동안 검토만 되고 있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를 도입하려면 자본시장법을 바꿔야 한다. 현행법상 증권신고서 제출 전 특정 기관에 물량을 주는 사전 공모 행위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2023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7년 공염불 속 무너진 신뢰

한국에서 코너스톤 제도는 기계적인 형평성 논리에 갇혀 있다. 초대형 기관 위주로 코너스톤 투자자가 형성되면 중소형 기관과 개인투자자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의 효율과 선진화를 외치면서도 공모주 투자자 반발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개인투자자에게 공모주 청약을 받는 데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균등 배정 방식으로 나눠주는 곳이 한국이다.

[최석철의 자본시장 직설] 코너스톤 제도가 7년째 헛도는 이유

올해 초 금융위원회는 ‘의무 보유 확약 우선배정 제도’ 등을 담은 IPO 수요예측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코너스톤 제도 카드를 다시 꺼냈다. 의무 보유 확약 우선배정 제도는 기관투자가 배정 물량 중 40% 이상을 일정 기간 팔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관에 우선 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코너스톤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진정성 있는 장기 투자자를 추려내기 위한 방편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미국 등 해외 기관투자가 대부분은 내부 투자심의 절차상 확약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번에야말로 코너스톤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해외 기관의 국내 투자 확대를 독려하기 위한 예외 조항 등 다양한 방안이 함께 논의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선 다를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 2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코너스톤 제도를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대선 정국에 묻혔고, 대선이 끝난 후에는 상법 개정안과 추가경정예산안 등 각종 현안에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한국 IPO 특유의 후진성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단타 매매를 위한 기관투자가의 묻지 마 청약이 계속되면서 신뢰할 수 없는 공모가가 산정되고 있다. 결국 상장 후 주가가 급락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매년 누더기식 제도 개선이 거듭돼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공법’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IPO 실무자들은 “제도 개선안을 내놓을 때마다 마지막에 코너스톤 제도가 ‘포장지’처럼 들어간 지 수년째”라며 “그럴듯해 보일 뿐 실현 가능한 방식과 세부 설계에 관해 의견을 구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책이 힘을 가지려면 시장의 신뢰와 정부의 의지가 모두 필요하다. 지금까지 코너스톤 제도는 이 둘을 모두 잃었다.

완전히 기대를 접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 주요 후보들이 코너스톤 제도 도입을 공약에 포함시켰던 만큼 여전히 제도화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에선 자본시장 선진화가 제대로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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