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샤오캉(小康) 사회'는 중국이 국정 목표로 추진해온 사회 모델이다. 모든 국민이 물질적 고통 없이 평안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를 뜻한다. 샤오캉은 유교 경전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말로, 난세(亂世)에서 대동(大同.이상향)으로 가는 중간 단계다. 이 목표를 처음 꺼낸 지도자는 덩샤오핑이다. 그는 일단 샤오캉 사회를 선결해야만 사회주의 유토피아인 대동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덩샤오핑은 1979년에 샤오캉을 의식주 문제 해결을 마친 단계로 규정하며 20세기 말을 달성 시한으로 공언했다. 장쩌민도 이를 계승해 2020년까지 국민 1인당 소득 6천 달러를 달성하는 샤오캉 사회를 전면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덩샤오핑의 유지는 지금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이어받았다. 시 주석은 취임과 함께 국정 철학으로 제시한 '중국몽'(中國夢)에 '2020년 전면적 샤오캉 실현'이란 계획을 포함했다.
공약을 반복한 것에서 보듯, 지난 세기 완수하겠다던 샤오캉은 지금도 요원해 보인다. 장쩌민이 2002년 샤오캉 사회에 진입했다고 선전하면서도 다음 단계로 '전면적 샤오캉 사회' 건설을 목표로 제시한 것부터 '언어유희'가 됐다. 현 정부 목표도 여전히 전면적 샤오캉 사회 건설이다. 시 주석은 전임자처럼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하지만, 샤오캉이 작년 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도 여전히 과제에 포함된 건 어찌 설명할까. 1인당 국내총생산(GDP) 목표는 달성했으나 샤오캉의 의미는 14억 인민 모두 의식주 문제로 힘들지 않은 상태이니 아직 멀었다는 게 외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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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산당대회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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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중국의 극심한 빈부 격차와 줄지 않는 빈곤층이다. 덩샤오핑 이래 중국은 전체주의 체제의 강점만 살려 외형 성장과 절대빈곤 탈출에 진력했다. 그 덕에 경제 규모는 급성장했으나 몸만 커진 아이처럼 안으론 각종 문제점이 쌓였다. 중국의 GDP는 세계 2위이고 1인당 GDP도 세계 평균을 넘긴 했으나 그 부가 극소수 부자들에 집중됐다는 게 문제다. 한때 중국 전체 부의 3분의 1가량을 1% 부자가 보유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지배 계층은 성장 낙수를 누렸으나 다수 인민은 가난한 현상이 중국의 최대 약점이 된 것이다. 신뢰도가 낮은 중국 당국 발표에서조차 중국의 지니계수(빈부 격차 지수)는 심각한 수준인 0.5에 수렴한다. 2023년엔 인민 9억6천만 명이 월소득 2천 위안(약 38만 원) 미만으로 생활한다는 통계가 중국 경제매체에 실렸다가 하루 만에 삭제돼 화제가 됐다. 수치대로면 전체 14억 중 10억 가까운 인구가 샤오캉과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매우 역설적이다. 사회주의가 부의 불평등 원흉을 자본주의로 지목하며 인민의 결과적 평등을 모토로 탄생한 체제인데,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커지는 형국이다. 도농 간, 계층 간, 신분 간 격차 등이 커지며 계급사회 양상이 심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도 이를 방치하면 체제 전복 위협이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내부에서 경고음을 내기도 하고 관리에도 애를 쓰지만 쉽지 않다.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회견에서 리커창 당시 총리는 "14억 인구 중 6억 명의 월소득은 1천 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된다. 이것으론 집세조차 내기 어렵다"고 우려한 적도 있다.
특히 농민공 문제는 체제 자체를 흔들 뇌관으로 지목된다. 농민공이란 거주지를 제한하는 '호구제'라는 독특한 제도 아래 농민호구를 가졌으나 도시에서 사는 사람을 뜻한다. 도시호구가 없으니 의료, 공교육 등 기본 인권에 해당하는 혜택도 못 받는다. 불법 이민자와 비슷한 신세다.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돈으로 겨우 끼니를 잇고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이런 농민공이 무려 3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사회주의를, 한국이 자본주의를 하는 게 신기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실제로 통념상 중국인은 이재에 밝고 상술에 능하다는 인식이 세계에 퍼져 있다. 샤오캉 염원과 달리 중국의 자본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진 걸 보면 어떤 체제를 택하든 본성을 따라가는 건 아닐까. 반대로 우리는 유교 사농공상 신분 문화가 원산지 중국보다 더 강하게 발현됐다. 상행위와 자본 축적을 천시했고 밥을 굶어도 형이상학 고담준론이 더 중요했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 '배 아픈 것보단 배고픈 게 낫다'는 말이 있을 만큼 평준화 의식도 강한 편이다. 미 군정 시기인 1946년 8월 동아일보가 발표한 군정청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 정부 체제로 무엇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응답은 사회주의가 70%, 공산주의가 7%에 달했고 자본주의는 14%에 그쳤다. 이게 원래 우리 본성인데 애써 억누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잠시 떠올렸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8월04일 10시0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