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 사라진 SKY대학[횡설수설/장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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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서울역 앞에 민주화 시위대 10만 명이 모였을 때 해산을 결정한 건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들이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다. 이처럼 독재 시절 대학 총학생회장은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고, 거액의 현상금이 걸릴 만큼 존재감도 컸다. 졸업 후 ‘비싼 몸값’으로 정치권에 영입되는 경우도 많았다. 현 정부만 봐도 김민석 국무총리,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송영길 전 대표, 우상호 전 비상대책위원장, 한병도 원내대표 등이 그렇다.

▷그 시절 총학생회장을 놓고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계열이 캠퍼스에서 치열한 선거전을 벌였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총학생회를 꾸리지 못하는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해와 올해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연이어 무산됐다. 고려대와 연세대 역시 올해 총학생회 선거를 치르지 못한 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른바 ‘SKY 대학’에서 모두 총학생회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다른 대학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 1월 기준으로 서울 주요 대학 20곳 중 9곳에 총학생회가 없다.

▷총학생회가 존립 위기에 놓인 근본 원인은 시대 변화에 걸맞은 역할과 정체성을 찾지 못한 데 있다. 대학생이 지식인으로서 사회 변혁을 이끌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이제 구성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이 남았지만 등록금, 주거, 취업 같은 현실적 문제 앞에서 총학생회는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총학생회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냉담한 반응이 퍼지면서 총학생회장 선거 때 투표율은 20, 30%대까지 추락했다. 아무리 기간을 연장하며 독려해도 ‘투표 성립’ 요건조차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한둘이 아니다.

▷팬데믹은 ‘총학생회 무용론’에 기름을 부었다. 비대면 강의와 온라인 과제가 일상화됐고, 오리엔테이션(OT)이나 응원전 등 자연스럽게 모일 기회도 줄었다. 연대감과 소속감이 약해지면서 ‘학생회 활동을 할 시간에 학점을 따거나 스펙을 쌓는 게 낫다’는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확산됐다. 상당수 대학에서 총학생회 운영을 위한 학생회비 납부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면서 재정 여건까지 악화됐다.

▷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되면 단과대 대표 중 비대위원장을 뽑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일부 대학에는 비대위원장조차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학생 대표가 아예 공석이라고 한다. 독재 정권과 정면으로 맞섰던 총학생회가 이제 대학과의 협의조차 제대로 못 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총학생회 없이 e메일로 학교에 의견을 전하고, 축제는 별도의 위원회가 담당하는 상당수 일본 대학의 모습이 한국 대학 캠퍼스의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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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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