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현대맨, 권오갑 HD현대 명예회장 인터뷰
‘샐러리맨의 신화’ 31일 현역서 물러나
“조선업 무너지면 지역-가정 초토화
불황 극복이 나라 지키는 것이란 각오”
“아침 6시 출근, 샌드백 200번 루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에서 만난 권 회장은 현역에서 물러나며 정주영 창업회장이 떠올랐다고 했다. 권 회장은 “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창업자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현대에 입사했다. 부푼 마음으로 당시 광화문 사옥에 첫 출근 하던 신입사원 시절도 떠오른다”며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힘든 일을 하면서 성장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10월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달라진 것이 있나.
“평소 리듬을 깨지 않게 여전히 밤 10시 반∼11시에 잠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그 시간에는 40대처럼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신문을 한 시간 읽고, 오전 5시 반에 출근해 6시에 경기 성남시 판교 사옥(HD현대 글로벌 R&D센터)에 간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식판을 들고 함께 식사하는 굉장히 기쁜 시간이다. 많은 직원들이 나에게 따뜻한 인사를 해줘 너무 고맙다.”
―사원에서 회장까지 올랐고,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에 전문경영인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비결이 뭘까.“원칙을 지키려 했고, 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남들보다 두세 배 더 노력했다. 부족하니까 좋은 분들을 찾아 도움을 청했다. 기합도 참 많이 받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원망스러운 마음보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또 국가를 최우선으로, 그다음으로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회사가 국가에 이은 두 번째인가.
“국가가 온전히 있어야 회사도, 가족도 안전할 수 있다. 회사를 지키는 게 나라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2008년부터 10년 넘게 조선업 불황이 이어졌다. 세계 1등 하는 조선업을 못 지키면 부산, 울산, 경남, 전남 목포까지 완전히 초토화돼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무서웠다. 어떻게든 불황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지키고, 현대중공업을 지키고, 우리 직원들의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 여겼다. 기술에 매진했고 사람을 키웠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결국 가서 회사를 살리지 않았나.
“신입사원부터 들어온 회사가 가라앉고 있는데 그냥 도망갈 순 없었다. 정말 어떻게 보면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노동조합은 반대하고, 구조조정도 불가피했고, 빚은 쌓여 있고, 공사는 다 적자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동료, 후배들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었다. 그 가정을 파괴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이게 뭐지, 왜 내가 이걸 이렇게 독하게 해야 하지’ 했다. 당시 울산에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붙었는데 ‘주인보다 10배 독한 놈이 나타났다’고 쓰여 있었다.
중공업 사장이 되고 나서 보니, 정주영 창업자가 모래벌판 사진을 들고 배를 팔러 다니던 때가 57세였다. 늦은 나이에 500원 지폐 속 거북선 보여주며 중공업을 ‘창업’했다는 사실이 위안을 줬다.”―전문경영인인데 월급도 안 받았다.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월급을 안 받겠다고 했다. 3년은 0원을, 그다음엔 20∼30%씩 받아서 4년 정도 안 받았다. 월급쟁이가 월급을 못 받으니 생활비가 없어서 이것저것 팔고 살았는데 불황이 언제 끝날지 깜깜했다. 그래도 그 선택 덕분에 절박함이 더 컸다. 정말 나는 출근할 때마다 ‘내 회사’라고 생각했다. 소신 있게 경영했고, 운 좋게 잘됐다. 17개 회사가 다 흑자가 나고, 회사가 25배 성장을 했다.”
(2014년 사장 부임 당시 시총이 7조 원이던 현대중공업은 현재 약 150조 원대의 그룹이 됐다.)
―HD현대 지주사 개편 당시 노조 반대가 심했는데도 노조와 잘 지내는 경영자로 유명하다.“대표이사에서 물러난다고 한 후 올해 1월 함께했던 역대 노조위원장 5명과 울산에서 같이 식사했다. 노조는 노조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불행하게도 한 지부장이 경주교도소에 가게 돼 면회를 가기도 했다. 6개월이라도 빨리 나오게 탄원서 쓰고 노력했다.”
―2011년 대기업 최초로 ‘1%나눔재단’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꿈은 65세에 월급의 1%를 재단에 기부하는 대한민국 1%나눔재단을 만들어 무임금 사무총장을 하는 것이었다. 좀 더 가지고, 배우고, 월급을 잘 받는 사람들이 최소한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대한민국 전체는 아니지만 현대오일뱅크에서 연봉 1%를 기부하는 나눔재단을 만들었고, 우리 직원 98%가 참여해 호응해 줬다. 연봉 1억 원씩 받으면 예전 시골에선 천석꾼 정도이고, 천석꾼이면 한 동네의 어려운 이웃을 살폈다. 그렇게 마음을 모아 100억 원 재원으로 매년 이웃과 나누고 있다.”
―얼마 전 동아마라톤에서 하프 코스를 완주하고, 안나푸르나도 다녀왔다. 어떻게 체력을 관리하나.
“몸이 단단해야 마음도 흔들리지 않는다. 54세에 도전을 시작해 2010년 동아마라톤 포함 풀코스를 네 차례 완주했다. 해병대 장교 시절 달리기를 잘 못 해 힘들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언젠가는 이를 극복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집무실에 샌드백을 가져다 놓고 매일 200대씩, 어떨 땐 500대도 때린다. 그러면 힘이 불끈불끈 솟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군가도 듣고 부른다.”
―한국 대기업에서 ‘샐러리맨 신화’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평가도 있다. 지금의 기업 환경에서 전문경영인이 영향력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전문경영인은 임기가 정해져 있고, 단기 성과 중심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5년, 10년 뒤를 내다보는 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전문경영인이라면 소신을 갖고 일해야 한다. 특히 회사를 위해 뜻을 굽혀서는 안 되는 순간에는 자신의 자리를 걸고서라도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그런 용기와 책임감이 전문경영인의 본분이다. 제일 나쁜 게 결정을 안 내리고 미루고, 위로 밑으로 패스하는 것이다.”
―‘정기선 회장’ 경영 체제가 안착하는 모습이다.
“정기선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지 5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나 잘해 왔고, 또 회사가 가장 어려웠을 때 저와 10년 이상 같이 일해 왔기 때문에 좋았을 때 30년 이상 근무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했다. 기본이 단단하기 때문에 서서히 할아버지의 경영철학 DNA가 나올 것이라 기대된다.”
―중국의 맹추격 속에서 K조선이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은 무엇인가.
“더더욱 사람과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현대중공업이 어려울 때도 신입사원은 계속 채용했고, 엔지니어를 중시했다. 그때 뽑은 신입사원들이 이제는 회사의 중추 세력으로 성장했다. 초격차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본을 오래 지킨 회사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권오갑 회장이 보는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정직한 사람이 결국 일을 잘한다. 단순히 거짓말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일에 책임을 지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일이 잘 안되면 안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잘되면 왜 잘됐는지 공유할 줄 알아야 한다.”
―현대맨 수식어를 떼고 ‘인간 권오갑’으로서 남은 인생에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청계산이 제일 높은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가장 높은 히말라야를 꿈꿨다. 지난해 12월 꿈꾸던 안나푸르나로 떠났다. 영하 5도에 침낭 하나에 의지하며 지난 시간을 복기하고, 나쁜 일은 내려놓고 왔다. 내려와 보니 여전히 버려야 할 게 많더라. 집의 옷가지부터 책, 그리고 마음의 짐까지. 미리미리 비우지 않으면 급하게 치울 때 ‘쓰레기’가 된다는 걸 깨달아서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우리 퇴임 임원들 부부 동반 모임 여행도 가고, 마라톤도 뛸 것이다. 현역이냐 아니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권오갑 HD현대 명예회장
권오갑 HD현대 명예회장은 1951년 출생해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1978년 통합 현대그룹 시절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 사장으로 부임한 권 회장은 2014년 위기에 빠진 현대중공업 사장에 취임하며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이후 2017년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현대중공업 사업 분할(2017년), 현대중공업 지주 출범(2018년) 등을 이끌었다. 2019년엔 그룹 회장으로 승진하며 한국조선해양 출범(2019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2021년) 같은 굵직굵직한 현안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울산대 및 현대학원 법인이사,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등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2021년 전문경영인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금탑산업훈장(2023년), 은탑산업훈장(2012년)도 수훈했다.
김현수 산업1부장 kimhs@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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