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중국의 정보기술(IT) 수준이 급성장했음을 체감한 것은 2023년 4월쯤이었을 것이다. 중국 로봇청소기 업체 로보락이 2022년 기준 한국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 업체가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삼성과 LG를, 그것도 안방에서 제쳤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가격이 싼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제품은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을 앞세워 지난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중국의 첨단 기술과 테크기업을 의미하는 레드테크의 부상은 다른 분야에서도 이어졌다.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중국의 CATL과 BYD는 2021년 한국의 빅3(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점유율을 처음으로 넘어선 뒤 올 1분기엔 53.7% 대 18.7%로 격차를 3배로 벌렸다. BYD는 올해 1분기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 15%로 12%에 그친 테슬라를 넘어섰다.
올 1월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도 있었다. 중국 딥시크가 오픈AI의 챗GPT와 성능은 비슷하면서 개발비용은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생성형 AI(딥시크 R1)를 내놓은 것이다. 메모리반도체에선 올 1분기 CXMT(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가 D램 세계 4위,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낸드플래시 세계 6위에 올라섰다.
레드테크는 알리, 테무 등처럼 직접 진출하는 방식과 함께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을 장악하려는 시도도 펼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텐센트가 일본 시장에 상장한 한국 게임업체 넥슨의 지분을 150억달러(약 20조원)에 인수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김정주 회장 유족들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넥슨의 지주사 NXC는 이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텐센트는 이미 한국 게임업체 지분을 대거 취득했으며 넷마블, 크래프톤, 시프트업 등에선 2대주주에 올라서 있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 일각에선 텐센트의 넥슨 인수 시도를 ‘게임 공정’으로 부르기도 한다.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다. 레드테크의 M&A 공습에 유족들의 상속세 물납으로 2년 전 NXC 2대주주가 된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