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럼프와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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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6.30 17:30 수정2025.06.30 17:30 지면A31

[천자칼럼] 트럼프와 기자들

도널드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취업 면접’이라는 NBC방송의 리얼리티 쇼 ‘어플렌티스’의 진행자를 맡아 돌직구 발언으로 인기를 얻었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장 역시 TV 예능 쇼를 방불케 한다.

지난달 말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 트럼프는 가장 싫어하는 CNN을 향해선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내 시간도 낭비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스페인 기자는 더 큰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스페인이 방위비 분담 비율을 지키지 않은 점을 꼬집어 질문을 끊고는 “당신네는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라는 말로 쏘아붙였다. 말 폭탄 속에서 트럼프와의 질의응답을 국익으로 연결하려는 외교관 같은 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핀란드의 여기자는 알렉산더 스투브 대통령과 트럼프 간 골프 회동을 언급하면서 “핀란드를 나토의 파트너로 어떻게 보느냐” “우리 대통령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설명해달라”고 물었다. 핀란드와 그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끌어내려는 다분히 의도된 질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여기자와의 질의응답 때는 회견장이 숙연해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미사일 방공체계 판매 의향을 묻는 질문에 둘의 대화는 사적 얘기로 이어졌다. 기자의 남편이 우크라이나 군인임을 알게 된 트럼프는 연민 가득한 표정으로 기자와 가족의 안부를 묻고는 “무기가 판매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기자의 눈은 촉촉해졌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간 30년 분쟁에 마침표를 찍는 평화협정이 체결된 백악관에선 콩고의 여기자가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아프리카 유일의 백악관 출입 기자라는 그는 단 2분 동안 트럼프가 듣고 싶은 말만 모조리 골라 했다. 트럼프는 24억달러 가치의 광물 자원을 가진 콩고 광물 개발에 관여하면서 ‘노벨평화상’까지 언급하는 아부 발언에 입이 귀에 걸렸다. 기자의 나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해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당신은 아름답고 내면도 아름답다. 당신 같은 기자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이 장면을 본 콩고 국민들이 흐뭇했을 것 같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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