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천단' 앞에 서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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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천단' 앞에 서는 트럼프

“하늘(탱그리)에서 명(자야투)을 받아 태어난 푸른 잿빛의 이리가 있었다.” 13세기 몽골 역사서 <몽골비사>는 칭기즈칸 일족을 ‘천명(天命)을 부여받은 존재’로 그리며 시작한다. 역대 중국 황제는 자신을 ‘하늘의 아들’을 뜻하는 천자(天子)로 칭했다. 일본 왕실은 오늘날까지 태양신 아마테라스에게서 하사받았다는 검과 구슬, 곡옥의 ‘삼종신기’를 권위의 근거로 삼는다.

천명사상은 중국에서 시작해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통치 이데올로기다. “드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라는 <시경>의 한 구절처럼 고대 중국인은 하늘 아래 모든 천하가 중국이라고 생각했다. 주나라 때 등장한 천명사상은 진한 시대를 거치며 ‘임금의 권한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관념으로 구체화했다. 그 결과 황제가 등장할 때는 ‘상서로운 구름이 일고 용과 기린이 나타났다’며 하늘의 선택을 받았음을 강조했고 나라가 망하면 일식, 지진, 역병, 홍수 등이 천명을 잃은 증거로 거론됐다.

통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황제의 주요 임무였다. 태산에 올라 즉위를 고하는 봉선 의식은 시대가 지나면서 황궁 근처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천단(天壇)을 쌓는 것으로 의례화됐다. 1420년 완공된 베이징 천단에선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들이 제천의식을 치렀다. 천단의 중심 건물인 기년전의 높이는 38m에 달하고, 천단 전체 면적은 자금성의 네 배인 273만㎡에 이른다.

중국을 국빈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천단을 찾는다. 2017년 중국 방문 때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자금성에서 만찬을 하는 ‘황제 의전’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역사적 랜드마크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셈이다.

‘중국식 세계 질서’를 상징하는 공간에 미·중 정상이 함께 발을 들여놓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작지 않다. 천명을 읽는 데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 고대인처럼 세계가 제왕적인 두 지도자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미·중 경제전쟁과 중동 전쟁, 세계질서 구축과 관련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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