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 이끈 공학자 이점바드 브루넬은 1843년 SS그레이트브리튼호를 진수했다. 철제 선체에 최초로 스크루를 적용한 사상 최대 선박이었다. 1845~1886년 대서양 횡단 노선에 투입된 이 배에는 500마력, 18rpm의 경사직동식 증기기관이 장착됐다. 증기기관이 탄광과 운하를 연결하는 지선 운송용 동력기관에서 승객과 화물을 싣는 상용 기관차를 거쳐 대형 선박으로 쓰임새가 넓어지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는 과도한 석탄 소비를 줄이기 위해 증기기관의 연료 효율을 높일수록 오히려 석탄 소비가 증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1865년 출간한 <석탄 문제>에서 기술 개량으로 증기기관 적용 분야가 넓어지면서 전체 석탄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후 기술 발전의 결과가 직관적 예상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현상을 두고 ‘제번스 역설(Jevons paradox)’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혁신적 신기술이 야기할 변화상을 잘못 짚는 사례는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다. MP3의 등장으로 CD는 사라졌지만, 유통되는 음원의 총량은 대폭 증가했다. 전력 소모가 적은 LED 조명이 전광판 등에 널리 쓰이면서 전체 조명용 에너지 수요는 도리어 늘었다.
그제 구글이 인공지능(AI) 연산의 메모리 사용량을 대폭 줄이는 데이터 압축 소프트웨어 터보퀀트를 공개하자 글로벌 반도체 회사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AI와 사용자가 나눈 대화의 맥락을 저장하는 KV캐시 메모리 사용량을 6분의 1로 줄이면서 메모리 반도체 회사의 ‘AI 특수’가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마이크론 키옥시아 샌디스크 등 관련 업체 주가에 급제동이 걸렸다.
데이터센터에서 구동되던 AI모델이 ‘터보퀀트 쇼크’를 계기로 스마트폰 등으로 급속히 확산할 것이라는 ‘AI판 제번스 역설’에 거는 기대도 없지 않다. 변혁의 파고는 예상을 뛰어넘을 때가 많다. 신기술 충격에 허둥대지 말고 변화의 파도를 즐기는 느긋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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