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양산 쓰는 남자들

5 days ago 4

입력2025.07.25 17:49 수정2025.07.25 17:49 지면A23

햇볕을 가리는 양산(陽傘)은 우산(雨傘)보다 역사가 길다. 기원전 3000년 이집트 파라오들이 천과 짐승의 털 등으로 양산을 만들어 사용했다. 볕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지도자의 위엄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중국에도 왕과 귀족이 기름먹인 종이로 양산을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양산이 우산으로 변한 것은 16세기 무렵이다. 유럽 귀족 여성이 주된 소비층이었는데, 비와 햇볕을 동시에 막는 ‘우양산’이 대세였다. 우산이 양산에서 독립한 것은 강철 우산살과 속이 빈 우산대가 등장한 19세기 이후다. 가볍고 튼튼한 현대식 우산은 금세 남성도 즐겨 쓰는 도구가 됐다.

[천자칼럼] 양산 쓰는 남자들

하지만 양산은 오랜 기간 여성용품이란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도구를 활용해 햇볕을 가리는 것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인식의 영향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고정관념이 많이 흐릿해졌다. 포털 사이트에서 ‘남성용 양산’을 치면 4만 개가 넘는 제품이 검색된다. 거리에서도 양산을 쓴 남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피부 건강을 걱정하는 남성들이 소비 성향을 바꿨다고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런 흐름을 감안해 2021년 양산의 정의를 손질했다. 기존엔 ‘주로, 여성들이 볕을 가리기 위해 쓰는 우산 모양의 큰 물건’이었는데, 이 중 ‘주로, 여성들이’라는 대목이 사라졌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남성 양산 쓰기 운동’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의 환경부 격인 환경성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양산 보급 활동에 나서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상수가 되면서 달라진 일상 속 풍경은 ‘양산남’만이 아니다. 택시 호출 건수가 부쩍 늘고, 대형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몰캉스’(쇼핑몰+바캉스)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시원한 곳에만 사람이 머무는 ‘에어컨 중력’ 현상이다. 건설 현장에서나 쓰이던 모자 부착형 아이스팩, 운동 선수들이 탈수를 막기 위해 먹는 나트륨 캔디 등이 일반인에게 인기를 끄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무더위가 물러가려면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다. 양산과 에어컨도 좋지만 더위를 이겨낼 체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