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이미자 하면 늘상 떠오르는 게 성대 해부였다. ‘이미자가 죽으면 성대를 해부하기로 일본 의사랑 계약이 돼 있대. 그러고는 성대만 따로 박물관에 보관한대.’ 한때 우리 사회에 짠하던 그 소문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때인 1970년대 후반이었다. 물론 낭설이다. 이미자는 그만큼 노래를 잘했다.
한국 가수 중 최초 기록을 가장 많이 가진 가수는 단연 이미자다. 베트남 파병 장병 위문 공연, 평양 단독 공연 모두 이미자가 처음이다. 1960년대 이미 일본 음악회사의 전속 가수로 음반을 냈으니 해외 레이블 계약도 최초다. 대중 가수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처음 올랐고, 금관문화훈장도 처음 받았다. 1990년에 음반 560장, 취입곡 2069곡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는 2500곡이 넘는다.
본인조차 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수많은 곡 중 그가 가장 아끼는 노래는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등 금지곡 트리오다.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 OST인 동백아가씨는 섬처녀 미혼모인 여주인공이 ‘동백빠아(bar)’에서 일하는 여급이 된 데서 유래했다. 앨범이 100만 장 이상 팔리고, 35주 연속 인기 차트 1위에 올랐으나 ‘왜색풍’이란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섬마을 선생님’은 일본 노래를 표절했다는 게 이유였으나, 기실은 그 일본 곡이 나중에 나온 노래다. ‘기러기아빠’는 나라가 한창 뻗어나가는 시기에 비탄조의 처량한 곡은 부적절하다고 해서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모두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해금됐다.
이미자(83)가 지난 주말 고별 공연을 했다. 1959년 ‘열아홉순정’으로 데뷔한 지 딱 66년 만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그의 노래를 위안 삼아 가부장제의 질곡을 버텨냈고, 아버지들은 그의 노래를 노동요 삼아 개발연대의 고난을 이겨냈다. 이미자는 “정말 애절한 마음으로 노래하지 않으면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말을 남겼다. 파독 광부들이 탄광 갱도에 카세트를 붙여 놓고 석탄을 캐면서 들었다는 ‘동백아가씨’의 한 소절이다. “그리움에 지쳐서/울다 지쳐서/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