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부그룹 창업자이자 중의원 의장을 지낸 일본 정·재계 거물 쓰쓰미 야스지로는 가정사가 복잡했다. 수많은 내연녀가 낳은 그의 자식만 족히 100명은 될 거라고 사람들은 쑥덕였다. ‘첩의 자식’ 쓰쓰미 세이지는 그런 아버지에게 반감이 강했다. 문학 속으로 도피했고, 재벌가 자녀임에도 공산당에 입당했다. 방황의 값비싼 대가인지 1964년 야스지로가 죽자 세이부그룹은 일곱 살 어린 이복동생 요시아키 손에 넘어갔다.
세이지 몫으로 남은 것은 삼류로 평가받던 세이부백화점이었다.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남다른 미적 안목을 앞세워 업계 변화를 주도했다. 세이부백화점은 일본 백화점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 사무실을 열고 에르메스, 아르마니, 입생로랑 등의 브랜드를 들여왔다. 1980년대 후반에는 미쓰코시백화점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세이지는 프랑스어로 계절을 뜻하는 ‘세종(saison)’에서 따온 세존그룹이라는 고급스러운 이름 아래 자신의 유통회사를 한데 묶었다.
도쿄 시부야는 세이지의 꿈이 만개한 장소였다. 1968년 문을 연 세이부백화점 시부야점은 세계 각지 음반을 구매하고 고급 화보집을 훑어보는 문화 명소가 됐다. 패션 중심지 파르코, 종합 잡화점 로프트, 비워냄의 미학이 담긴 무인양품 등 세이지가 일군 유통제국은 시부야를 전초기지 삼아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세존그룹의 이름을 딴 미술관과 극장이 줄지어 들어섰다. 그는 ‘시부야를 만든 남자’로 불렸다.
시부야에 마지막으로 남은 백화점인 세이부백화점이 오는 9월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불황과 급격한 소비 트렌드 변화 탓에 도큐백화점 시부야본점(2023년) 등이 물러난 데 이어 백화점의 ‘시부야 시대’를 연 주역마저 58년 만에 퇴장하는 것이다.
계열사가 220개에 달할 정도로 무리하게 확장한 세존그룹은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자금난에 봉착해 2000년 공중분해됐다. 자신이 일군 제국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본 세이지도 2013년 사망했다. 이제 시부야에 남아 있는 세이지의 마지막 유산도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시대를 풍미한 기업인의 공과를 떠올려 본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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