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세 살 사교육 아홉 살까지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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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3.14 17:40 수정2025.03.14 17:40 지면A23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9조2000억원으로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이다. 자녀들이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앞섰으면 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사교육을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실력을 높일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어서다. 획일적인 공교육으론 부족해 시장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구매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를 말릴 방법도 마땅치 않다.

[천자칼럼] "세 살 사교육 아홉 살까지만 간다"

문제는 사교육 시장의 표적 연령대가 과도할 정도로 어려졌다는 데 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선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이란 말이 보통명사로 쓰인다. 세 살 이전에 영어유치원 입학을 준비하고, 초등학교에선 의대를 겨냥한 수학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찍 배운 아이가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선행불패’가 학원들이 내세우는 공통된 논리다.

하지만 조기 선행교육이 사교육의 장점인 ‘효율’을 항상 보장하지 않는다. 7세 때 한두 달이면 뗄 구구단을 3세 때 가르치면 똑똑한 아이라도 1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학습에 필요한 인지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학부모들은 배운 게 있으니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거릿 버치날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 연구팀은 조기교육을 받은 만 3~5세 유아 4667명을 추적 분석한 연구를 지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만 9세까지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올라가지만, 그 이후엔 조기교육의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 골자다. 6학년(만 11세)이 되자 조기교육을 받은 모집단에서 수학과 쓰기 능력이 뚝 떨어지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인 아이들이 부쩍 늘어난다는 사실도 관찰됐다.

영어 등 외국어 학습도 투입한 시간 대비 효율이 나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원어민에 버금가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해당 언어를 쓰는 환경에서 1만 시간 이상 노출돼야 하는데, 이는 사교육으론 해결하기 힘든 수준이다.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과한 선행교육이 아이의 스트레스만 키우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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