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신문을 ‘위대한 선동자’라고 불렀다. 미디어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꿰뚫은 표현이다. 방송은 신문보다도 전파력과 도달력이 더 강하다. 특히 편집 없이 날 것 그대로 표출되는 TV 중계의 파급력은 폭발적이다.
19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간 미국 대선 최초 TV 토론회는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한 방이 됐다. 흑백 TV로 중계돼 당시 미국 인구의 3분의 1이 시청할 정도로 화제를 모은 토론회에서 닉슨은 스튜디오 배경과 비슷한 회색 양복을 입어 화면에 묻혀버린 데 반해 검은색 정장의 케네디는 흑백 화면에서 단연 도드라져 보였다. 둘의 나이 차이는 4살에 불과했지만 화면 속 이미지는 삼촌과 조카뻘에 가까웠다.
TV 중계에 가장 밝은 정치인은 도널드 트럼프다.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명성을 쌓은 트럼프는 기자회견은 물론 정상회담도 TV 중계하도록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이 그의 ‘정상회담 TV 쇼’에서 희생양이 됐다. 시청자들은 그가 진행한 ‘어프렌티스’의 명대사 “You’re fired!(넌 해고야)”를 떠올렸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TV 중계를 정치적으로 종종 활용한다. 푸틴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국가안보회의를 TV 중계로 내보내도록 했다. 사전 편집된 영상 속에서 푸틴은 자신의 질문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보기관 수장을 거세게 닦아세워 원하는 답을 유도했다. 러시아 국민들이 전쟁의 당위성을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그제 국무회의가 깜짝 생중계됐다.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이 면박당했고,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질책받았다. 반복된 산업재해로 ‘미필적 고의 살인’ 표현까지 들은 한 기업은 모든 현장 작업을 중단했다. 공직 사회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장관들이 현안을 세세하게 챙기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기업에는 과도한 군기 잡기로 비칠 수도 있다. 특히 생중계의 경우에는 참석자들이 언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