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韓·日판 솅겐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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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7.29 17:59 수정2025.07.29 17:59 지면A31

엄연히 대륙 국가인 우리나라지만 동·서·남쪽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북쪽은 오갈 수 없는 장벽이 된 지 올해로 80년이다. ‘국경선’이라는 단어가 문학적인 표현으로만 다가오고 실감하기는 힘든 이유다. 감각적으로는 사실상 섬나라에 가깝다.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유럽을 여행할 때 마주치는 가장 낯선 경험은 국경을 넘을 때일 것이다. 여권을 꺼내 들거나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그저 달리다 보면 어느새 거리 간판과 이정표의 언어가 바뀌고 풍경도 달라진다. 국내에서 시·도의 경계 지역을 지나는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천자칼럼] 韓·日판 솅겐 조약

1985년 서독,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5개국이 국경 출입국 심사를 폐지하고 사람들의 자유 이동을 보장하자고 맺은 ‘솅겐 조약’ 덕이다. 5개국은 독일, 프랑스, 룩셈부르크 접경을 흐르는 모젤강에 띄운 배에서 조약을 체결했다. 누구의 땅도 아닌 강 위에서 국경을 활짝 여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그 후 인근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솅겐은 ‘국경 없는 유럽’의 상징이 됐다. 이제는 유럽연합(EU) 27개국 중 아일랜드, 키프로스를 제외한 25개국과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을 합쳐 29개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일판 솅겐 조약’을 맺자는 보고서를 냈다. 한국과 일본이 단일 비자만 도입해도 외국인 관광객 184만 명이 추가로 한국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다. 관광 수입 18억5000만달러, 일자리 창출 4만3000개, 생산 유발 효과가 6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한·일판 솅겐 조약은 이미 지난해 외교부 관계자 등을 통해서도 나온 아이디어다. 여권 없이 양국 간 왕래가 가능하게 하자는 얘기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얼마 전 치러진 참의원 선거의 참정당 돌풍에서 보듯 일본의 ‘외국인 배척’ 분위기는 걸림돌이다. 지난해 3687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과잉 관광의 몸살을 앓는 일본이 선뜻 응할지도 의문이다. 국경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금세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한·일 협력 확대는 되돌릴 수 없는 미래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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