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연애 예능 ‘나는 SOLO’에 출연한 한 여성이 “40개가 넘는 난자를 얼려 뒀다”고 해 화제가 됐다. 다른 여성 출연자보다 나이가 많지만, 출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였다. 요즘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난자를 냉동 상태로 보관하는 것이 유행이다. 질병, 조기 폐경 등으로 난소의 기능 약화가 불가피한 여성이 주 고객이다. 출산 시점을 최대한 늦추고 싶은 이들도 난자를 냉동한다. 만 35~37세가 되면 가임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난소가 건강할 때 미리 난자를 확보해 두는 것이다.
과거엔 막 채취한 난자를 활용해 체외수정을 시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냉동 난자의 해동 후 생존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해서였다. 난자 속 수분이 천천히 동결되면서 생기는 얼음 결정이 세포를 파괴하는 사례가 많았다. 1990년대 등장한 ‘유리화 냉동’ 기술이 확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약품 처리를 통해 수분을 최소화한 뒤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를 활용해 난자를 순식간에 얼리는 게 핵심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난자의 해동 후 생존율이 90% 안팎까지 올라간다.
냉동 기술 발달로 난임·고령 부부의 임신이 한결 수월해졌다. 여성의 몸 상태가 좋은 시점을 골라 시술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아예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배아를 얼려서 보관하기도 한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서 체외수정으로 출생한 아이는 150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데 이 중 절반 이상이 냉동 난자나 배아를 활용했다. 보관할 수 있는 기간도 상당하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팀 피어스와 린지 피어스 부부는 1994년 냉동한 배아를 통해 임신에 성공했고, 지난달 26일 아들을 낳았다. 배아를 냉동한 시점부터 계산하면 신생아의 나이는 31세가 되는 셈이다.
요즘 여성 직장인 게시판엔 ‘애는 나중에, 지금은 나’라는 제목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 경력 단절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30대에 출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직장 여성들의 토로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는 더 이상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난자와 배아 냉동이란 제3의 선택지도 있을 수 있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