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강원도에서는 강릉과 동해안 최북단 역인 제진을 잇는 철로 건설이 한창이다. 3조5000억원을 들여 111㎞의 기찻길을 까는 공사다. 완공되면 수도권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국토의 동서축과 부산에서 제진까지 닿는 남북축이 연결된다.
강원 지역의 교통 편의성뿐 아니라 국가의 물류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사업이어서 정부는 이 공사를 올해 신속집행 계획에 포함시켰다. 지난달에는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이 현장을 찾아 진행 상황을 챙기는 등 빠른 건설에 공들이고 있다.
조기 재정 집행 효과 갈수록 줄어
하지만 2027년으로 잡았던 강릉~제진선 개통 시기는 2028년으로 늦춰질 전망이다. 민원과 인허가 문제로 공사가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연된 탓이다. 상당수 구간을 민원에서 자유로운 터널로 설계했지만 소용없었다. 터널 공사에 필요한 대형 환풍기를 설치하기 위해 작업로를 까는 데도 소음과 먼지를 불평하는 민원이 이어졌다.
강릉~제진선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강진~광주 고속도로는 건설 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견돼 2023년이던 완공 시점이 3년 밀렸다. 토지수용, 민원, 인허가 때문에 과거보다 토목기술이 훨씬 발달했는데도 공사기간은 하염없이 길어지는 추세다. 그럴 때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매년 사상 최대 규모의 신속집행에 나서는 정부는 애가 탄다. 신속집행은 국가재정법에 근거해 하반기에 투입할 예산을 상반기로 당겨쓰는 정책수단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한 효과는 약 두 분기 뒤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4분기에 집행한 효과는 이듬해 나타나기 때문에 그해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집행 시기를 1~2분기로 앞당기면 부양 효과가 오롯이 그해 성장률로 이어진다. 정부가 매년 신속집행을 기획하는 이유다. 연초부터 경기가 살아나면 소비자심리지수(BSI) 등이 개선돼 민간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민간주도 성장 위해 구조개혁 해야
기초지방자치단체까지 이어지는 강력한 행정조직과 정보화 시스템을 모두 갖춘 우리나라는 신속집행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다. 정부의 예산회계 시스템 ‘디브레인’은 열흘 단위로 예산 집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일본만 해도 정보화가 부족해 신속집행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는 신속집행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예산을 1~2분기에 집중 투입하는 만큼 3~4분기에 쓸 돈은 줄어든다. 3~4분기 재정 집행 효과가 반영되는 이듬해 1~2분기는 경제의 힘이 빠진다는 뜻이다. 이를 막으려면 더 큰 규모의 신속집행이 필요하다.
정부가 매년 사상 최대 규모의 신속집행을 계획한 결과 2019년 61%이던 상반기 집행목표가 올해는 66.8%까지 높아졌다. 이렇게 매년 규모를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고 정부 당국자들도 인정한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세 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신속집행을 집중했는데도 건설 부문이 1분기 경제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내린 사실은 정부의 경기부양력이 예전만 못함을 보여준다. 한때 GDP의 40%에 달한 정부 재정 비중이 20%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신속집행 속앓이 대신 구조개혁을 서둘러 민간 주도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