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서소문 고가차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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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서소문 고가차도의 운명

서울 신촌·이대 등 서부지역과 시청·광화문 도심을 이어온 서소문고가차도가 이달 17일 철거 공사에 들어간다. 1966년 길이 335m, 폭 14.9m, 왕복 4차로로 개통된 지 59년 만이다. 하루 평균 4만여 대의 차량이 지나는 이곳은 노후화에 따른 안전성 문제가 불거져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이 결정됐다. 청계천 복원에서 보듯 서울에선 도시 미관 개선과 주변 상권 활성화 차원에서 노후 고가도로는 아예 걷어내는 사례가 많았다. 철거 후 제자리에 다시 세워지는 건 서소문고가차도가 처음이다.

서울역7017의 실패

이런 운명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임 중이던 2017년 보행 전용로로 전환한 ‘서울로7017’과도 대비된다. 서울로7017의 전신인 옛 서울역고가차도는 1970년 건립돼 공덕 등 서부에서 명동, 남산 1·3호 터널까지 직통으로 잇는 핵심 교통망이었다. 폐쇄 직전 이곳의 하루 평균 교통량은 4만6000여 대(2015년)에 달했다. 이번에 재시공되는 서소문고가차도보다 15% 많은 수치다.

교통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낙후된 지역에 관광객 유입을 늘려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게 박 전 시장의 의지였다. 논란 끝에 사업을 강행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2017년 개장 첫해 하루 평균 3만2000여 명의 방문객이 찾았지만 그 이후부터 쭉 내리막길을 탔다. 올 상반기엔 1만7000여 명까지 쪼그라들었다. 돈이 적게 든 것도 아니다. 교각과 상판 등을 그대로 남겨뒀음에도 서소문고가차도 재시공 예산(499억원)보다 많은 6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여기에다 유지 관리비 명목으로 매년 수십억원(올해 16억원)이 지출되고 있다.

보행 전용로의 잠재력을 따진다면 오히려 서소문고가차도가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서소문고가차도 동쪽 서소문로에는 덕수궁과 서울시립미술관, 호암아트홀(현재 재건축 중) 등이 있고 서쪽에도 서소문역사공원·성지역사박물관, 약현성당 등이 있다.

문화·예술 가교 되려면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약현성당과 조선 후기 순교자들이 처형당한 서소문 성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 명소가 하나로 연결된다면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역사·문화·예술 거리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쪽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건 왕복 10차선 통일로와 경의중앙선 철길이다. 철길 건널목엔 지금도 하루 350여 대의 열차가 통과한다. 전국 최대 규모다. 거의 3분에 1대씩 온다는 게 건널목을 지키는 코레일 관계자의 설명이다. 종착역인 서울역을 앞두고 열차들이 서행하다 보니 대기 시간도 짧지 않다. 운이 나쁘면 수분씩 기다려야 한다. 양쪽 거리가 단절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가차도 대신 지하도를 건설하기도 쉽지 않다. 땅 아래에 바로 시청역과 충정로역을 잇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가차도 아래 바닥분수와 야간조명 등을 설치해 이색 테마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시도는 2010년 한 차례 현실화했지만 몇 년이 채 못 가 다시 슬럼화됐고 끝내 ‘철거 엔딩’을 맞았다. 내년 5월까지 철거되고 2028년 2월께 재탄생할 새 고가차도가 역사·문화·예술의 가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오세훈 시장이 묘안을 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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