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알사탕 같은 고마운 말들[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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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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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떡집에 들렀다. 앳돼 보이는 여자 상인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화장기 없는 말간 뺨에 홍조를 띤 얼굴이 같이 간 아이들을 보자 단박에 둥그레졌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 이끌려 슬그머니 말을 붙였다. 원래 남자 사장님이 계시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상인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깥양반이요? 애 좀 보라고 안으로 들여보냈어요. 아들이 생후 20개월인데, 그동안 제가 집에서 혼자 봤거든요. 어지간히 힘들어야죠. 나도 바깥공기 좀 쐬겠다고, 냅다 애 맡기고 나왔어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나는 웃으며 맞장구쳤다. “어유, 잘하셨다. 우린 일하는 게 쉬는 거죠. 애 보는 게 훨씬 힘들다고요.” 그러자 상인이 정말로 행복하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깥공기가 너무 달아요!”

아이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수다를 떨면서 떡을 골라 계산했다. 상인은 가래떡을 덤으로 얹어주더니 주머니에서 알사탕을 꺼내 아이들에게 쥐여주었다. 불쑥 내게도 알사탕 두 알을 내밀었다. “엄마는 고생했으니까 원 플러스 원이에요.”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참으로 다정한 사람, 명랑하고 상냥하고 너그러웠다. 조그만 사탕이 뭐라고 괜히 아까워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깜빡하고 잊어버렸다.

불과 며칠 뒤, 나는 심사가 울적해져 거리를 걸었다.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있는 것처럼, 평소 누군가에게 유쾌하게 말을 붙여볼 만큼 싹싹한 사람 역시 때론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언제나 구김살 없이 반반할 수 없단 걸 알지만, 뭘 해봐도 어그러지고 도무지 풀리지 않아서 마음이 한껏 구겨진 날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거리를 텁텁한 마음으로 걸으며 속엣말을 털어놓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을 때 친구가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그냥 하릴없이 걷고만 있다니까 그가 중요한 걸 알려주듯이 속닥거렸다.

“잘 됐다. 내가 힘내는 법 하나 알려줄게요. 나는 길을 걷다가 가끔 소리 내서 파이팅을 외쳐요. 좀 부끄럽긴 해도 그게 생각보다 힘이 나더라고요. 힘내자고 생각만 하지 말고 소리 내서 말해보는 거, 은근 괜찮아요.”

다 큰 어른이 길거리에서 “파이팅” 하고 혼잣말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휴대전화 너머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진짜 웃기죠? 그래도 꼭 한 번 해봐요”라고 당부했다.통화를 마치고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바닥에 문득 바스락거리는 알사탕 두 알. 떡집에서 받았던 사탕이었다. 다정했던 상인의 얼굴도, 고분고분하게 받았던 칭찬도 덩달아 떠올랐다. 그래, 고생했으니까. 힘내야 하니까. 알사탕 하나를 꺼내서 까먹었다. 사탕은 얼떨떨하게 달았다.

알사탕을 입안에 굴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가 “파이팅”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려 보았다. 이거 엄청 부끄러운 일이구나. 얼굴이 달아오르고 나는 바보처럼 웃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주머니에 알사탕 같은 말들을 챙겨 다녀야지 싶었다. 명랑하고 상냥하고 너그럽고 귀여운, 그래서 고마운 말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나눠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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