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곧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씨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얼마 안 됐던 걸로 기억된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사적인 것을 다 걷어내고 공적인 걸로 채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부연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는 데 몇 개월이 걸렸다. ‘정치적 동업자’였던 안희정을 구속시키고 나서 비로소 대통령이 됐다”고 했다.
김병준 씨가 꺼내고 싶은 본론은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대통령이 덜 됐다”는 거였다. 이른바 친윤(親尹)이란 세력과 여사만 감싸안고 다른 사람들 얘기는 귀담아듣지 않으려는 것을 꼬집는 말이었다. 그 후 윤 전 대통령의 운명은 아는 대로다. 끝내 사적인 걸 걷어내지 못하면서 일국의 대통령직에서 중도 하차해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이런 면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출발은 나쁘지 않다. 오랜 기간 이 대통령과 연을 맺어오면서 가장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두 사람(정성호, 이한주)을 첫 인사에서 배제한 것부터 인상적이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사와 정무,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은 정책 분야에서 이 대통령의 오랜 멘토로 알려져 있다. 정 의원은 일찌감치 어떤 역할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정책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이 원장도 국정기획위원장으로 한발 물러섰다. 국정기획위는 새 정부 주요 정책 아젠다를 세팅하는 역할을 맡는 한시 조직이다.
실제 관료 집단을 거느리며 정책을 집행하는 힘 있는 자리(정책실장)를 실력 있고 평판 좋은 관료 출신(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에게 넘긴 것도 의외 인사다. 정책실장은 이념을 설계하는 측근에게 맡기고, 경제수석에 관료를 써온 관행에 비춰보면 의미 있는 변화다.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해 ‘국민추천’을 받기로 했다는 것도 ‘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신선한 충격이다. 추천을 받는다고 모래 속에 숨은 진주가 나올 리 만무하겠지만 ‘사사롭지 않게 인재를 널리 구하겠다’ ‘오로지 능력 위주의 실용적인 인사를 하겠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읽힌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그만큼 인재 구하기가 어렵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과거 대통령실에서 인선을 담당한 참모는 이런 말을 했다. “장관 했던 사람들치고 처음부터 1순위 후보자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꽤 잘한다고 평가받은 A장관은 열 번째 후보였고, 심지어 열아홉 번째 후보가 최종 낙점된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사람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재명 정부의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등 몇몇 참모진의 기본 진용은 갖췄지만 내각 인선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다. 총리 청문회 통과 후 제청 절차 등에 걸리는 물리적 시간 말고도 흠결 없는 인재를 찾아 설득한 뒤 직을 맡기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의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는 데 흔히 걸림돌로 지적되는 게 주식백지신탁, 인사청문회, 취업 제한 등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민간의 유능한 인재를 끌어올 만한 공직의 메리트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미 공직 사회는 도전도, 혁신도 없이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2류들이 머무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가득하다. 과거에는 정책을 입안해 국가를 움직인다는 자부심이 컸지만 입법부가 거대 권력화된 지금은 꿈같은 과거 얘기다. 의원과 보좌진에게 굽신거리고 지시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패배 의식, 책임질 일은 아예 피하려는 보신주의가 팽배한 게 지금 관가다.
공직의 유능한 인재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속속 민간으로 이탈하는 이유다. 그나마 장차관 자리에 오를 고위직은 아직까지 인재풀이 있지만, 국장급 밑으로 내려가면 S급 인재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이런 마당에 민간에서 잘 다듬어진 스마트한 인재 중 누가 구닥다리 공직에 들어가려 하겠는가.
결국 허망한 얘기지만 모든 것에 군림하는 정치를 바꾸지 않고선, 입법 권력이 절대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국회에 예속된 정부는 민간에 갈수록 뒤처질 것이고 알량한 자존심만 남은 2류 공무원들은 존재감을 키우려 시장의 뒷다리나 잡는 규제 정책만 양산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