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난도에 상관없이 꾸준하게 좋은 점수를 내는 선수가 진짜 실력자라는 말이 있다. 이런 선수들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다. 멘털도 강하다. 어떤 위기에 빠져도 침착하게 대처해 파 세이브로 마무리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의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파72)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총상금 2000만달러) 2라운드에서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왜 자신이 세계랭킹 1위인지를 보여줬다.
상황은 이랬다.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18번홀(파5)에서 셰플러의 티샷이 왼쪽으로 크게 휘어져 절벽 아래 해변으로 떨어졌다. 해변으로 뛰어 내려간 셰플러는 한참을 걸어간 뒤 자갈 위에 놓인 공을 발견했다.
절벽 때문에 홀 방향이 보이지 않았지만 셰플러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캐디와 대화를 나눈 뒤 공 주변에 있는 작은 돌멩이들을 제거하고 웨지샷으로 공을 페어웨이로 꺼냈다. 이후 어프로치샷으로 온 그린, 투 퍼트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미국 골프닷컴은 “전형적인 셰플러의 순간이었다”며 “보기 드문 실수 뒤에도 네 차례나 완벽히 평정심을 잃지 않은 스트로크를 선보였다”고 극찬했다.
변경된 규칙을 잘 활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2019년 골프 규칙이 큰 폭으로 바뀌면서 벙커나 페널티 구역 내 방해가 되는 돌과 나뭇가지 같은 자연장해물(루스 임페디먼트)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셰플러는 “돌멩이들을 치울 수 있었기 때문에 절벽 위로 공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른손 부상으로 휴식을 취한 셰플러는 이번 대회로 복귀전을 치렀다. 남다른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준 이날을 포함해 사흘 연속 언더파 스코어를 적어내 공동 10위(10언더파 206타)로 최종 4라운드에 나선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