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안 보고 투자 말라” 월가 전설 펀드매니저[이준일의 세상을 바꾼 금융인들]

3 days ago 3

피터 린치

피터 린치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전쟁 전 배럴당 60달러였던 두바이유는 두 배인 12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유소마다 미리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늘어서고, 쓰레기봉투가 품절되는 등 전쟁의 여파가 일상으로까지 들어왔다. 6,000을 넘던 코스피도 3월 중 10% 넘게 폭락해 30일 기준 장 초반 5,100대로 내려앉았다. 채권, 금, 주식이 동시에 하락하면서 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한 매매는 큰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1977∼1990년 13년간 연평균 약 29%의 수익률을 올린 놀라운 펀드가 있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실제 수익률은 훨씬 낮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큰 손실을 보기도 했다. 실적이 좋다는 뉴스를 듣고 몰려들었다가 실적이 나쁜 해가 오면 겁을 먹고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피델리티의 뮤추얼펀드 매니저, 피터 린치가 운용한 ‘마젤란펀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린치는 1944년 미국 매사추세츠 뉴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학 교수였는데, 린치가 열 살 때 세상을 떠났다.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린치는 11세 때 집 근처 골프장에서 캐디 일을 시작했다. 명문 골프장에서 린치는 사업가, 변호사, 의사들이 말하는 투자 이야기를 엿들었다. 종목 이름을 말하면 신문에서 찾아보고, 나중에 올라 있는 것을 확인하며 흥미를 가졌다. 단골 고객 중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임원이 있었는데, 투자에 대해 물어보는 린치를 눈여겨봤다.

린치는 보스턴칼리지에서 역사, 심리학, 철학을 공부하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1966년 피델리티에 인턴으로 입사해 산업 분석부터 시작했다. 33세이던 1977년, 당시 자산 규모가 18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마젤란펀드의 매니저가 됐다. 13년 후 그가 은퇴할 때, 마젤란의 자산은 140억 달러로 불어나 월가의 전설이 됐다.

린치는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해 투자 기회를 얻곤 했다. 던킨도너츠 매장이 항상 붐비는 것을 목격하고 재무제표를 분석한 뒤 투자했는데, 마젤란의 최고 수익 종목 중 하나가 되는 식이다. 주가수익비율(PER)을 이익성장률로 나눈 주가이익성장비율(PEG)을 적극 활용해 업계에 전파하기도 했다. 단순히 PER가 높다고 해서 고평가된 것이 아니라, 충분한 성장이 뒷받침되는지에 따라 가격의 타당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은 린치를 롤모델로 삼곤 한다. 주변을 눈여겨 살피는 것으로 훌륭한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종목의 발굴에 해당하는 것일 뿐, 실제 투자는 타당성을 검토한 뒤 이뤄져야 한다. 그 종목의 재무제표를 이해할 수 없다면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린치의 조언을 떠올리자. 또한 린치는 장기 보유 투자자가 아니라 수많은 종목을 수시로 매매했다. 고도의 집중과 헌신, 시스템을 요구해 개인이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이다.

린치는 수천 개 종목은 기억하면서 딸들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46세에 은퇴했다. 최고의 펀드매니저도 투자가 삶 전체를 잠식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우리의 삶이 투자로 인해 부서지도록 방치한다면 안 될 일이다.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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