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맹인류가 몰려온다. 책맹인류란 아예 책을 읽지 못하는 무리를 지칭한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지적 태만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무지몽매한 사람은 대체로 확증 편향이 강하고 반사회적 경향을 보이기 십상이다. 책을 읽으려면 그것에 맞는 회로와 배선을 뇌에 장착해야 한다. 이것 없이는 책을 읽을 수 없고, 있더라도 오래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책과 아예 담쌓고 사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머지않아 이들이 책맹인류가 될 것이란 우려를 낳는 까닭이다.
문해력 키우면 학습능력 향상
한국은 자식 교육열이 유난히 높은 나라로 손꼽힌다. 우리 주변엔 취학 연령 이전인 다섯 살에 한글을 떼고, 여섯 살에 영어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며, 일곱 살에는 중국어를 배우는 아이도 있다. 서너 살에 진로를 정한 채 선행학습에 뛰어들고 영어유치원은 시험을 봐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에서 청소년의 문해력이 심각하다는 보고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학생 10명 중 9명은 ‘사흘’이 3일인지 4일인지 모르고, ‘심심한 사과’를 두고 왜 사과를 심심하게 하느냐고 따질 정도로 어휘력이 빈곤하며, 일부는 교과서를 아예 읽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문해력 저하가 앞으로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학습 능력도 저하된다. 학습 능력은 책 읽기 능력과 정비례한다. 따라서 독서 능력 감소와 문해력 저하는 맞물린 문제다. 문해력 저하는 책 읽기를 멀리한 데 따른 결과인데, 교육 현장에서 성적에는 관심을 갖지만 독서 능력을 키우는 일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길게 보자면 즐겁게 읽기에 빠진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학습 성취도를 드러내게 될 테다.
문해력이란 어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읽고 그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미국 교사이자 독서운동가인 카림 위버는 말한다. “문해력은 가장 위대한 시민의 권리다.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회의 어떤 것에도 접근하지 못한다.” 이 말에 기대자면 문해력이 없다는 것은 사회적 외톨이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문해력 격차는 어휘력 격차와 연결된다. 어휘는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소통과 공감의 도구다. 평소 쓰는 가용 어휘의 범주를 보면 그의 어휘력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책을 읽어야 '머릿속 사전' 풍성
<문해력 격차>(김지원, 민정홍 지음)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다가 ‘심성어휘집(mental lexicon)’이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낯선 어휘를 발견했다. 쉽게 말하자면 ‘머릿속 사전’이란 뜻이다. 이것을 우리가 언제라도 인출해서 쓸 수 있는 은행 잔고에 비유할 수 있다. 은행 잔고가 적으면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문제가 생기듯이, 우리의 ‘머릿속 사전’도 내용이 빈곤하다면 곧 바닥을 드러내고 문제를 파생시킬 것이다.
어휘력을 배양할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읽기다. 인지신경과학자들은 책 읽는 습관이 어린 시절에 결정된다고 말한다. 책은 느린 매체다. 책 읽기는 주체의 능동이 요구되는 사회 인지적 활동이다. 책 읽기는 문자를 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책 읽기의 성과는 하루아침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요즘 대다수 청소년은 책 읽기보다 과잉 정보 자극으로 가득 찬 웹소설, 웹툰, 게임, 유튜브, 쇼츠, SNS에 더 친화적이다. 짧은 동영상 시청에 빠진 학생에게는 흔히 “집중력 저하, 정보 기억력 감소, 즉각적 만족 선호”(<문해력 격차>)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정보 자극에 항상적으로 노출된 학생이 책을 느긋하게 집중하며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책 읽기가 높은 주의 집중력 속에서 뇌의 복잡한 프로세스가 동시적으로 작동하며 이뤄지는 까닭이다.
문해력 격차는 책을 읽지 않은 탓에 생긴다. 문해력의 기반은 책 읽기다. 책 읽기가 습관으로 정착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책을 읽어야 어휘력을 향상시킬 텐데, 책을 읽지 못하니 그게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독서 경험이 적을수록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자신의 한정된 앎에 갇혀 미몽에 갇힐 가능성이 커진다. 복잡한 현실에서 판단하고 인식하는 데 문제를 겪고, 균형 잡힌 인격을 닦는 일도 힘들어진다.
문해력 격차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해결될까? 결론을 말하자면 문해력 격차는 나이가 들수록 더 벌어진다. 이로 인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도 적지 않다. 어휘력이 평균 이하라면 이는 문해력 격차로 이어지고, 이것은 다시 소득의 양극화를 낳는 원인 중 하나가 될 테다.
사회적 독서가 세계적인 흐름
문해력을 키우는 데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독서 양도 중요하지만 질도 따져봐야 한다. 의무로서의 읽기가 아니라 즐거움을 찾는 놀이로서 읽기가 장려돼야 한다. 사회적 독서가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한다. 이것은 혼자 읽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협업하며 읽는 행위인데, 이를테면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한 권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읽는 방식이다.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타인과 함께 읽고 지식, 정보, 느낌을 나누는 독서 행태인 사회적 독서의 효과는 읽기의 지속성을 두텁게 하고 읽기의 즐거움을 높이는 걸로 나타난다.
문해력의 문제는 책 읽기와 따로 떼서 볼 수 없다. 다양한 책을 읽어 어휘력이 높아진 사람은 대체로 문해력도 높다. 읽지 않는 아이는 반드시 문해력이 평균 이하인 어른으로 자라난다. 개인차가 있지만 당신의 문해력을 높이는 데 독서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테다. 자, 당신의 문해력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그리고 문해력의 기반인 어휘력 사정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어휘는 42만2890개라는데, 당신이 평소에 인출해 쓸 수 있는 ‘머릿속 사전’의 어휘는 얼마나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