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전술' 中에 밀린 韓 게임…직원도 "유연근무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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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바람 좀 쐬며 걷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는데 요즘엔….” 한 대형 게임업체의 엔지니어와 얼마 전 주 52시간 근로제에 관해 얘기할 때의 일이다. 그는 최대 애로사항으로 “근무 시간 중엔 10분 이상 산책을 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직장 동료들과 ‘담배 타임’을 가지며 아이디어 회의를 하려고 해도 밖에 나가야 하는데 조금 길어질 것 같으면 근무 중단을 알리는 벨을 누르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를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회사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는 ‘칼퇴근’을 위해 주로 사무실 책상을 떠나지 않는다.

게임업계는 주 52시간제를 엄격히 적용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 산업으로 꼽힌다. 한 게임업체 대표는 “게임산업은 창의성과 집중력의 싸움인데 근로 시간에 얽매여 핵심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어쩔 땐 퇴근 시간에 쫓겨 회의를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주 52시간제에 대해 업종 특성을 무시한 적용이라고 호소한다. 새로운 게임을 출시할 때 일감이 몰리는데 이때에도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시에 평시 규율을 적용하는 셈이다.

국내 게임사들이 규제에 발목이 잡힌 사이 중국 게임업체는 글로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개발자 인건비가 저렴한 덕분에 인력을 대규모로 확충해 신작을 쏟아내고 있다. 모바일 시장 조사기관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인기 게임 순위에서 중국 게임이 1위(매출 기준)와 2위를 차지했다. 게임 강국으로 불리던 안방을 중국에 내준 격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게임사들은 3교대로 개발자를 편성해 쉼 없이 코드를 짜고 있다”며 “국내 게임사가 정규직 개발자를 대규모로 늘려도 따라잡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게임업계 종사자 151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시행한 설문 조사에서 58.7%가 노동 유연화에 찬성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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