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의 허술한 부분들을 악용해 큰 부를 축적해놓고는,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인 양 떠드는 사람들이, 특히 내가 속한 386세대에서는 낯설지 않다. 소련이 망한 뒤로 그들의 ‘패션(fashion) 좌파 놀음’의 이상향은 북유럽 선진국들, 요컨대 스웨덴 같은 진보적 복지국가다. 그런 자리가 역겨워 조용히 일어날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경제적 형편상 ‘사회주의자 적격판정 대상자’인 내가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일으켜서 저런 가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재산을 몰수해버려야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과거 내 소원이 진짜 사회주의자 만나보는 거였는데 요즘은 ‘진짜 사회민주주의자’ 만나보는 거로 바뀐 이유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면(假面)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러는 건 이념이나 양심이 아니라, 취미이자 고질병이다. 스웨덴에서는 소득이 있는 국민의 거의 100%가 세금을 납부한다. ‘저소득층도’ 소득의 대략 32~33%를 낸다. 고소득자는 누진 구조에 의해 많게는 소득의 절반이 넘게(55% 정도까지) 낸다. 반면 한국은 근로소득자 중 절반 이상(약 55%)이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고 나머지 45% 정도마저 세액공제로 상당 부분 환급을 받아, 실제로는 ‘전체 국민 5명 중 1명 정도’만 소득세를 부담한다.
한국에서 스웨덴처럼 세금을 걷으면, 민란(民亂)이 날 것이다. 게다가, 북유럽 선진국 ‘국민들 개개인’의 재산형성 과정은 매우 깨끗하고 세금내역과 납부기록 전체는 ‘다른 모든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것은 한국에서 사민주의정당 대선후보(역시나 부자더라)조차 안 하는 일이며 저 진보주의자 행세하는 부동산 재테크의 달인인 지식인과 개념연예인(?) 등은 물론 평범한 한국인들 역시 슬금슬금 피하거나 기절초풍할 사안이다. 그 혹독한 책임들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의 국민들은 실천하고 있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조세수입(세금+사회보험료)의 비율을 의미하는 ‘국민담세율’이 예컨대 스웨덴은 약 42.6%이고 한국은 27% 내외에 불과하다.
담세율이 높아야 국가는 낭비성 부채로부터 보호되고 정치 수준이 상승한다. ‘조금이라도’ 자기 돈을 내야 국가 공동체에 대한 ‘약탈적 판타지’가 아닌 ‘정상적인(normal) 주인의식’을 가진다. 국민의 80%가 사실상 세금을 내지 않는 이 나라의 정치적 판단은 위험하다. 한국인들이 정치인들의 거짓에 쉽게 속고, 계속 속고, 그 속은 것을 정의로움에 취해 전파하고, 막상 국가적 난제들에 대한 개혁에는 기어코 반대하는 까닭은 이 담세율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아기의 진짜 엄마는 칼로 아기를 두 동강 내 가짜 엄마와 나눠가지지 않는다. 스웨덴 수준의 강력한 의무들을 개개인이 군말 없이 감당해야, ‘일단’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가 유지되고 국체가 붕괴하지 않는다.
경제는 경제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정치와 체제 때문에 망한다. 스웨덴의 도덕성은 근대의 합리와 자유시장경제, 금융질서의 도덕성이다. 한국인의 성리학적 도덕성 같은 ‘경계성 도덕장애’가 아니다. 스웨덴의 필수 수칙들을 정작 자기 자신은 절대 지키지 않을 거면서 “한국은 스웨덴 같은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한국인이 너무 많다. 공짜가 좋은 거야 나를 포함한 인간의 본색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적 정의가 되면, 베네수엘라 같은 엄청난 산유국조차 망한다. 한때 차베스를 레닌처럼 숭배하던 386세대의 사민주의는 인지부조화적인 엉터리이자, 진보정치 사기꾼들의 권력과 축재를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베네수엘라의 정치는 경제, 입법, 사법, 행정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절대’ 회생불가능한 ‘파멸국가’를 완성했다. 그런 나라‘들’을 당장 유튜브로 검색만 하면 ‘시궁창 현실’이 생생히 펼쳐지는데도 개의치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은 명확한 사실이나 소중한 진실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각인된(imprint) 무지에 복종하는 ‘노예’다. 특히 386들에게 스웨덴이나 베네수엘라는 어차피 똑같은 이상향이다. 스웨덴은 제대로 모르고, 베네수엘라는 모른 척한다. 중요한 건 마약 같은 ‘이상향’이니까. 한국에서는 진짜 사민주의정권이 있을 수가 없다. 한국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