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에서 출발한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6관왕을 거머쥐었다.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차트 1위 석권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 K콘텐츠, K컬처의 저변을 넓힌 쾌거다. 영국 BBC는 “한국은 미국 엔터테인먼트계에서 가장 중요한 4대 상인 에미상(2022년 ‘오징어 게임’), 그래미상(1993년 소프라노 조수미), 오스카상(2020년 ‘기생충’), 토니상을 모두 받으며 ‘에고트’(EGOT·4개 상 앞 글자를 딴 단어) 지위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영국 외 비영어권 국가로는 최초 사례로, 문화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나 독일도 이루지 못한 기적 같은 성과다. 전방위로 뻗어가는 한류는 이제 문화적 유행을 넘어 한국의 경제력과 외교력, 나아가 국력을 키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콘텐츠산업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2022년 기준 132억4000만달러를 돌파하며 2차전지, 전기차, 가전 등 주력 수출 품목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런 인기는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콘텐츠 수출이 1억달러 늘어날 때마다 화장품, 식품 등 소비재 수출은 1억8000만달러 증가한다(한국수출입은행)고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한류 콘텐츠 때문에 방문한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K콘텐츠의 성공과 함께 한글을 향한 전 세계적 관심도 높다. 세계 최대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 통계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용자 가운데 한국어 학습자는 1770만 명으로 스페인어, 프랑스어, 일본어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2년 만에 95%나 늘어난 수치로 증가율 면에선 압도적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보급하는 국가기관인 세종학당의 전 세계 수강생은 2023년 기준 21만6226명으로 1년 새 20.8% 증가했다. 한글을 익힌 외국인들은 K콘텐츠를 더 깊이 이해하고, 한국의 음악·영화·뷰티·음식 등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신뢰와 선호를 키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문화가 곧 경제이고, 문화가 국제 경쟁력”이라며 “적극적인 문화예술 지원으로 콘텐츠의 세계 표준을 다시 쓸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천명했다. 한류 확산과 한글 보급이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의미 있고 시의적절한 비전이다. 미국의 권위 있는 랭킹조사업체 US뉴스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2017년 31위에서 2023년 7위로 급상승했다. 경제성장률을 능가하는 ‘소프트 파워’ 성장세다. 이는 곧 한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 외교력 강화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세계 30개국에서 37개 재외 한국문화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랍권 등에선 아직 현지 언어로 된 정보 콘텐츠와 한국문화 체험 기회 부족을 호소하며 인프라 확충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재외공관을 K소프트 파워 확산의 전초기지로 재편해야 한다. 기존 외교 창구와 재외국민 보호 역할을 넘어 한국문화에 호감을 가진 현지 대중을 포용하는 열린 ‘문화산업 플랫폼’으로 기능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한글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고 현지 대학과 연계한 한국어 과정 개설을 확대하는 동시에 한류 콘텐츠와 지역 문화 산업과의 융합을 추진해야 한다. 문화외교의 최전선에서 소프트 파워 강국의 미래를 열어갈 전략 거점으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